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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5
    (성명서) 국가권력은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  국가권력은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다. 우리는 의사표현을 통해 인간 존엄을 실현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언론과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하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은 어린이·청소년 도서 중 12권이 편향된 역사의식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한 민간단체의 자의적인 주장에 근거하여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의 추천도서 적절성에 대해 재고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냈다. 공문이 시행된 뒤, 그 책들이 목록에서 삭제되거나, 일부 도서관에서는 실제 폐기하였다.


    여러 가지 정치적·사회적·문화적·교육적 입장을 지닌 단체는 자신들의 소신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발표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정부와 교육당국이 특정 단체의 입장표명과 여론의 압력을 받아,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현장에서 자기검열의 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도록 지시를 내리는 것은 교사와 사서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5월 28일 초, 중, 고 및 25개 교육지원청에 발송한 「언론보도관련 논란 도서 처리 협조」(문예교육과-3651)라는 제목의 공문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있어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공문은 이후 철회되었다고 하지만, 이 공문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문제는 다시는 재발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공문에는 ‘사실왜곡과 좌편향적 내용이 담겨 있어 청소년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도서목록과 관련하여’라고 하였는데, 논란이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라고 하는 것은 교육청의 지침으로 부적절하다. 또한 특정 시각에 관한 책을 학생들이 읽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처사이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관점의 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관점의 책이 도서관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교사와 사서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책은 지은이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쓴 것이므로 가치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독자는 작가의 시선에 감동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알던 세계와 새롭고 낯선 세계가 만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게 된다. 독자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가치관을 형성해갈 것인지를 국가기관이 관여하는 일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둘째, 공문에는 ‘해당도서를 이미 대여하여 읽은 학생들에게는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과목과 연계하여 지도’라고 하였다. 이는 학생의 독서이력을 검열하라고 교육당국이 지침을 내린 것이다. 도서관에서 독자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다. 독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특정한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고,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독자가 편향된 시각을 가졌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학교도서관에서나 공공도서관에서 독자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조회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도서관의 이용자들은 자신의 어떤 정보가 어떻게 쌓이고 있는지, 또한 그 정보를 누가 어떻게 열람하고 활용하는지 전혀 모른다. 독서이력을 검열당하고 있고,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학생과 시민들은 도서관 이용을 꺼리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에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서관이 독자의 독서이력을 관리하는 일을 멈추어야 하며, 도서관이 정보 수집 등의 편의를 위하여 개인정보를 축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서관은 도서반납 이후에 독자의 도서 대출 기록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군사독재 시대에 가혹한 도서검열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문화 및 도서관문화의 현장에서는 아직도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자기검열을 하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그 한 가지 예일 것이다. 자기검열이 있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상상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고 자기검열이 있는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바라는 우리는 

    첫째, 국가권력이 독서의 자유,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의 현장에서는 교사와 사서의 자율성을 강화하여 독자의 권리를 지키고, 학문·출판·사상의 자유를 지켜내도록 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정보와 자유로운 사상의 광장인 도서관의 본질을 지켜서 우리 국민이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인간의 존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당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길 요구한다. 

    셋째, 개인의 독서이력을 관리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함부로 열람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강화하길 요구한다. 

    넷째, 도서관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책을 폐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당하게 폐기된 책이 제자리에 꽂히길 요구한다.   


    2015년 7월 13일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


    1인출판협동조합, 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문학협의회, 어린이문화연대, 어린이책시민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전국학교도서관사서연합회,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책읽는서울시민모임, 청소년출판협의회,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한국사서협회,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행복한아침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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