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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02
    독서 -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中에서

  •    네가 열살 전에는 파리하여 자주 잔병을 앓더니만 요즈음 들으니 힘줄과 뼈마디가 굳세고 씩씩하며, 정신력도 거칠고 고달픈 일을 견딜 만하다니 가장 기쁜 일이구나. 무릇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일을 보살필 때는 응당 거기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정신력이 있어야만 근면하고 민첩할 수 있고, 지혜도 생기며, 업적도 세울 수 있다. 진정으로 마음을 견고하게 세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내가 몇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큰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나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예컨대 「자객전(刺客傳)」을 읽을 때 기조취도(旣祖就道)라는 구절을 만나 "조(祖)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으면, 선생은 "이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제사에다 꼭 조라는 글자를 쓰는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묻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집에 돌아와 자서(字書)에서 '조'라는 글자의 본뜻을 찾아보고 자서에 있는 것을 근거로 다른 책을 들추어 그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고찰해보아라. 그 근본 뜻뿐만 아니라 지엽적인 뜻도 뽑아두고서, 『통전(通典)』이나 『통지(通志)』『통고(通考)』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의 예를 모아 책을 만들면 없어지지 않을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는 한가지도 모르고 지냈던 네가 이때부터는 그 내력까지 완전히 알게 될 것이고, 비록 홍유(鴻儒)라도 조제에 대해서는 너와 경쟁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데 우리가 어찌 주자의 격물(格物)공부를 크게 즐기지 않겠느냐? 오늘 한가지 물건에 대하여 이치를 캐고 내일 또 한가지 물건에 대하여 이치를 캐는 사람들도 이렇게 착수했다. 격(格)이라는 뜻은 맨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뜻이니 밑바닥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2009. 9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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