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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06
    “KAIST서 인문·사회 독서 열풍 일으켜 보람”

  • ㆍ시정곤 교수, 과학도 ‘지식의 균형’ 위해 권장
    ㆍ‘독서 마일리지 제도’ 시행… 회원 500명 넘어

    “아무리 추워도 책은 읽어야죠.”

    2일 오전 11시, 갑작스러운 맹추위가 찾아든 대전 유성구 구성동 KAIST(카이스트) 캠퍼스. 지난 1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한 캠퍼스에 때아닌 ‘독서열풍’이 불어 영하의 날씨를 녹이고 있었다. 도서관은 물론이고, 학생회관·식당·강의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20100203.01400113000002.01m“3년 전 학교에서 독서 마일리지 제도라는 것을 새로 시행한다고 하더군요. 책을 읽은 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느낌을 나누도록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에 빠져들었죠.”

    ‘KAIST 최고의 책벌레’로 소문난 김예은씨(22·생명과학과 4학년)가 ‘독서바이러스에 감염된 까닭을 설명했다. 김씨는 매주 2-3권의 책을 독파한다. 시·소설·수필 등 문학 분야의 책을 특히 좋아한다. ‘지식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분야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이끌고 있고, 순수 및 응용·첨단과학에만 빠져있을 것 같은 KAIST인데…. 왜 KAIST 공부벌레들은 요즘들어 실용과는 관계가 먼 것으로 치부되는 인문·사회과학 서적 탐독에 빠졌을까. 그 중심에 인문사회과학부 시정곤 교수(46·사진)가 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공부벌레’로 불리는 KAIST 학생들을 ‘책벌레’로 만드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책은 곧 힘입니다.”

    짧고 명료한 이유였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분야의 지식만 ‘편식’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공계 두뇌집단인 KAIST의 경우 수학과 과학 분야에는 뛰어나지만 인문·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학생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맨처음 시작한 것은 ‘독서마일리지 제도’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나서 인터넷 카페에 느낌과 서평을 올리면 책 1권 당 1마일리지를 부여하는 제도다. 50마일리지가 넘으면 ‘실버’, 70마일리지를 초과하면 ‘골드’, 100마일리지를 달성하면 ‘플래티넘’이라는 이름의 인증서를 각각 수여한다. 학생들이 도서정보를 공유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학생과 교수·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100권의 추천도서도 선정했다.

    “독서 마일리지 제도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KAIST 학생들에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에요. 과학·기술분야에만 몰두해온 이공계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눈을 돌리도록 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화학과 박사과정 양성호씨)

    책읽기 바이러스’는 바로 활성화됐다. 첫해(2007년) 수십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가 매년 100-200명씩 늘어났다. 올 초 500명을 돌파했다. 전용 홈페이지에는 이날까지 무려 1073개의 서평이 올라와 있다.

    바이러스는 온·오프를 넘나든다. 책으로만 만나온 유명 작가들을 학기마다 캠퍼스로 초청한다. 이들이 참여하는 ‘책 읽는 밤’은 최고의 인기코너다. 그동안 김훈·공지영·박경철·한비야·조국 등 유명작가와 교수들이 KAIST 학생들과 함께 ‘책읽는 밤’을 보냈다.

    지난 학기부터는 이 바이러스가 기어이 강의실까지 침투했다. 학교 안팎에서 ‘KAIST 학생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뒤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시 교수는 책읽기를 아예 정규과목으로 편성하는 모험을 했다.

    과목 이름은 ‘독서와 토론’.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시간(오후 7-9시)에 격주로 진행되는 1학점짜리의 이 수업은 지난해 2학기 강의가 개설됐다. 학점 따기는 만만치 않다. ‘역사와 경영’, ‘자연과학’ 등 2가지 주제로 개설된 이 수업에는 8권의 책을 읽고 발표를 해야만 학점을 준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대박’이었다. ‘역사와 경영’ 과목의 경우 원래 적정 수강인원(15명)의 3배가 넘는 49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학교 측이 ‘분반’의 고민에 빠져있을 정도다.

    시 교수는 “KAIST의 독서 마일리지제도 등 책읽기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면서 10여개 대학이 벤치마킹해 갔다”며 “학생들이 독서를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접근해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 윤희일 기자 yhi@kyunghyang.com

    ~‘독서 마일리지 제도’ 시행… 회원 500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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