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출판전망대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6세기에 잠수함, 비행기, 로봇 같은 최첨단 발명품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물론 그 꿈들은 대부분 좌절됐지만 그런 꿈은 500년 전에는 아무도 품을 수 없는 대단한 이상이었다. 그런데 불세출의 천재로 평가받고 통합적 사고가 뛰어났던 그도 나눗셈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여자를 강단에 세우지 않던 서울대 법대의 완고한 전통을 깨고 25살 나이에 최초로 강단에 서고 한국인 여성 최초로 독일 유학을 다녀온 전혜린. 전세계에서 한 해에 한 사람 나오기 어렵다는 천재로 평가받았던 전혜린은 서울대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0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학 점수를 빼고도 전체 성적이 2등이었기에 간신히 구제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지금 한국의 학교에 다닌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책을 읽히고 똑같은 시험을 보아 능력을 파악하겠다는 독서이력철에다 독서능력검정시험마저 기획하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정책이 횡행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형편없는 독서교육 시스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9월28일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독서교육 및 도서관 활성화 방안’~은 분명한 원칙을 갖고 지향점을 확실하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크다.
가장 마음에 든 방안은 교사·학생·학부모의 다양한 독서활동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중·고등의 경우에 교사와 함께하는 독서토론 동아리 1000곳과 초·중학교의 경우 학부모 동아리 300곳 등 모두 1300곳에는 도서구입비 및 운영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 팀은 15명 내외로 구성되는데 앞으로 지원은 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단다.
교사와 학생은 팀을 함께 결성하고 같이 선정한 책을 읽고 다양한 독후활동을 하면 된다. 주제별 독후논술 및 토론활동, 문학 탐방, 작가와의 만남 등으로 이뤄지는 자율 활동의 결과는 공유가 가능한 온·오프라인 형태의 포트폴리오로 작성되어 앞으로 필요할 때마다 각종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이 방안 외에도 학교도서관 지역 문화센터화 사업, 책읽기를 통한 학습부진 학생 지도, 독서치료 프로그램 및 학교 자율의 도서관 활성화 지원, 학교도서관-공공도서관 협력망 구축, 교과교실제 학급 관련 교과도서 지원 등도 진일보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런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상명하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교과부는 이번 방안에 독서교육 전문교사, 사서교사, 독서전문가 등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했다. 책임자가 확고한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면 협의를 아무리 거쳐도 좋은 방안이 도출되기 어렵지만 이번 안의 세부계획을 보면 정말 믿어도 될 정도로 구체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방안도 현장에서의 실행이 중요하다. 모처럼 마련된 좋은 방안으로 현장에서 바람직한 독서교육이 실제로 이뤄져 제대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