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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2/03/14]
[도서관을 늘리고 채우자]5. 도서관정책 이렇게 바꾸자동사무소·마을문고 '분관'활용을 "수도권에 고속도로 1㎞를 건설하는 데 4백15억원을 투입합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자료구입을 위한 국고지원은 통틀어 1백34억원에 불과합니다."
도서관 관계자들이 자조적으로 비교하는 말이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2011년까지 도서관 시설과 장서를 현재보다 두 배 늘리는 '공공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선 9년간 매년 최소한 5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솔직히 계획안의 10%라도 실현될 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표한다.
◇도서관 정책.운영 합리화해야=도서관 복지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늘리고 채우는' 일과 함께 지역 도서관 간 네트워크 형성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국내 도서관문화의 중핵이 돼야 할 공공도서관이다. 현재 전국 4백33개의 공공도서관은 시.도 교육청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문화관광부로 행정체계가 3분돼 정책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도서관 간의 연계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A공공도서관은 교육청의 지시를 받고 B공공도서관은 지자체의 지시를 받는 식이라 중장기 정책을 세우기가 힘들다.
"정부 부처의 편의주의와 이기주의가 문제다. 지역주민의 복지란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도서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도서관의 정책은 문화관광부에서 통괄하고 그 운영의 주체는 지방자치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정동열(이화여대 문헌정보학)교수는 말한다.
이는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현상으로 주민복지를 책임질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때부터 도서관 대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예산을 따내 집행하는 등의 과정을 주민이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도서관 문제도 지역간 복지경쟁 차원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학교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현재처럼 교육인적자원부가 계속 주무부처로 남아야한다.
◇지식정보화 지역공동체 네트워크 지향=공공도서관에 대한 정책과 운영의 주체가 일원화되었을 때 동사무소내 여유 공간과 새마을문고 등의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구책'이 가능하다.
도서관 예산의 '혁명적 증대'가 '자구책'과 맞물려 전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지식정보화 지역공동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도서관문화를 선진화하는 최종적 밑그림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개 구에 한개 공공도서관'이 들어선다고 치자. 구청장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수준의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 자리를 잡고 그 지역내의 대학도서관과 학교도서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또 "동사무소나 새마을문고 등은 2천권 이상의 장서와 50평 이상의 공간만 확보하면 그 지역 공공도서관의 분관(分館)으로 인정해 활용한다. 분관은 지역 대표 공공도서관의 지도를 받으며 주민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올 수 있다"고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기획부장은 말한다.
이부장은 또 "구를 대표하는 구립도서관끼리 서울시안에서 연계하는 것은 물론 크게는 전국 16개 도를 대표하는 공공도서관이 모두 네트워크를 형성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서관 정보화를 한다고 개별 도서관마다 똑같은 작업을 중복투자 하고, 많이 보는 책과 적게 보는 책을 구분없이 매입하는 중복투자를 줄일 수 있기에 네트워크 형성은 미룰 수 없는 작업이다.
이렇게 될 경우 ‘걸어서 10분내 공공도서관’이란 선진국 기준엔 못미치더라도 그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식과 기부문화= 미국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들은 민간인의 기부에 의해 설립된 경우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도 미국의 관행처럼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건립한다고 했으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꼬집는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엔 기부가 들어와도 운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국립중앙도서관의 이치주 서기관은 털어놓았다.
기부자의 이름을 도서관에 명시하고 각종 세제 혜택과 인원 충원을 보장해 지자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과 재능으로 도서관 자원봉사를 원하는 사람을 활용하는 방안도 세워야 한다.
이용자의 시민의식도 절실하다. 아무리 예산을 투여해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무료 독서실’이나 ‘무료 컴퓨터 게임방’정도로 전락시키면 안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1996년부터 열람실을 폐지한 후 시험공부하러 오는 사람은 줄어든 대신 “진짜 책과 자료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사례는 향후 우리 도서관이 나아갈 방향으로 참고해 볼 만하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