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독서실 문화는 있어도 도서관 문화는 없다.” 책읽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도서관에는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보다 자기 책을 갖고 와 공부하려는 사람이, 책과 문화 프로그램을 늘려 달라는 사람보다 열람실 좌석을 늘려
달라는 사람이 아직은 더 많다. 예산 부족으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는 도서관 현실 역시 또다른 어려움이다. 갈 길이 먼
만큼 “제대로 된 도서관 문화를 만들고 싶다”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모임 이름은 ‘도서관 친구’다.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을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긴 시민단체다.
▶ 지난 7일 광진도서관친구 회원들이 도서관 회의실에 모여 모임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재찬기자
1900년대 초 독일과 프랑스의 공공도서관과 국립도서관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미국에는 전국에 3000여개의 도서관 친구 모임이 있다. 총 회원수는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년 전 생긴 서울 광진정보도서관(이하 광진도서관)의 ‘친구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왜 도서관의
친구로 자처하고 나섰을까. 여희숙 광진도서관친구 대표(47)는 “공공기관 최후의 보루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답을 구할 수 있는, 또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재산이나
학벌에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정보를 이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리서치를 바탕으로 창업이 가능한, ‘생산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들이 나서야 할 만큼 공공도서관을 공공도서관답게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일단 크게 지어진 다음, 속을
채우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공공도서관에도 경영 논리를 적용해 이익을 내지 못한다며 예산을 깎기 일쑤다. 광진도서관만
해도 2000년 당시 건립비 200억원 중 자료구입비는 3억원이었는데 이후 해마다 자료구입 예산이 감소했다. 예산이 모자라
정보도서관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전자책을 구입하지 못한 지 3년째다.
도서관 친구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예산이 부족해 하지 못하는 일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회비를 모아 기금을 적립하고
기금으로 도서관 시설 개선과 행사 개최 등을 지원한다. 송선경 광진도서관친구 총무는 “독서대, 강의실 커튼, 안내 데스크 등
도서관에 필요한 시설의 일부를 지원했다”며 “도서관 예산은 확보된 만큼만 집행할 수 있는 반면, 도서관 친구 기금은 필요할 때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광진도서관친구의 기금은 현재 2000만원 정도 된다. 도서관이 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로비활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구의회 예산 심의 과정에 의견을 개진, 도서구입용 예산을 지난해
5000만원에서 올해 9200만원으로 늘렸다.
도서관의 중요성 등을 알리기 위해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도 펼친다. 이용자 의식 개선은 도서관 측에서 도와주길
가장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안춘윤 광진도서관장은 “사소한 민원에 시달리다 보면 뭘 위해 일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지만
도서관 친구처럼 순수 자생단체가 도서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도움도 줄 때면 희망이 있는 것 같아 힘이 된다”고
말했다.
도서관 친구 활동은 회원 자신의 독서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광진도서관친구는 한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4~6월 석달 동안은 ‘경제학’이 주제다.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고, 아이들 독서
교육 방법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독서토론, 봉사활동, 기금 마련 등을 통해 도서관 친구는 ‘이상적인 도서관 문화’의 실체에 점점 다가선다. 그들이 꿈꾸는
도서관은 이렇다. ‘아이들은 방과후 학원으로 가지 않는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찾아 읽으며 숙제를 한다. 이용자가 궁금한 분야를
이야기하면 사서가 책 10권쯤을 골라서 준다. 도서관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정보를 검색한다. 거기서 얻는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창업을 한다.’
여희숙 대표는 말한다. “도서관은 건물도, 책도 아닙니다.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 즉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네트워크와 능력 있는 사서가 핵심입니다. 단 한 곳이라도 좋은 시스템을 갖춘 도서관이 생겨 이용자들이 진정한 도서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책읽기 문화도 많아 달라질 것입니다.”광진도서관친구는 광진도서관을 진정한 도서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달리고 있다.
임영주 기자 minerva@kyunghyang.com
“도서관 친구 적극 참여로 이용자가 주인될 수 있다”
김영석 명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44)는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선진적인 도서관 문화를 경험했다. 완벽에 가까운 도서관 인프라와
‘북스타트’ ‘도서관 친구’와 같은 책읽기·도서관 관련 시민운동이 생활 속에 자리잡은 것을 보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책읽기와 도서관 운동에 힘을 쏟게 된 것은 어찌보면 그에게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영국 국립도서관에는 도서관 친구들이 4000명이나 있습니다. 평생회원의 회비가
450파운드(약 90만원)인데 도서관 친구의 평생회원이 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회원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하죠.”
도서관 친구가 되는 것을 뿌듯해하는 이유는 도서관에 대한 강한 주인의식 때문이다. 자신의 기부로 도서관 예산이 늘어나면 도서관의
콘텐츠가 향상되고 그것이 곧 자신을 비롯한 시민 이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기부가
아깝지 않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서구 국가들의 특성상 도서관 친구 운동이 활발하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고서(古書)가
경매에 나왔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사질 못하고 있었죠. 그러자 도서관 친구가 1억원 정도를 들여 책을 사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도서관 친구의 대표적인 활동인 ‘기금 모금’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원봉사, 도서관 정책 개선을 위한 로비와 캠페인, 도서관 홍보, 지역주민과의 연계활동 등이 도서관 친구의 주요 활동”이라고
소개한 김교수는 “적극적으로 도서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도서관이란 공공시설이 자기 것이 되고, 자신이 낸 세금의 지출도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또는 도서관 직원에 의해 일방적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아닌, 이용자가 주인이 되는 도서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부터 도서관 친구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김교수는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광진정보도서관뿐 아니라 동대문정보도서관,
용인 구갈 희망누리 도서관, 가평 조종도서관, 국립디지털도서관, 부천시립도서관 등에서 도서관 친구가 만들어졌거나 준비 중이다.
김교수는 도서관 친구 활동이 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주부나 은퇴자 등이 여가를 의미있게 활용하면서
능력도 계발할 수 있다”며 “활동을 하다보면 독서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아, 독서 관련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