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04-28]
[삶과 문화] 책 안 읽는 사회? ‘도무지 대책을 찾을 수 없다. 철저하고 지독하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 대표의 푸념이다. 요즘 같은 불황이 없다는 하소연을 들은 지도 벌써 몇 년째이다. 상투적인 엄살이려니 하고 지나쳐 들었지만 이제는 아예 출판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자포자기의 수순에 진입한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쪽은 몰라도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전업을 한 지 오래고 그나마 남아 있던 몇몇 인문과학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어깨에 힘이 빠져 있다. 신문에 소개된 책들도 안 팔려 ‘큰일 났다. 더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이 역시 다른 작은 출판사 대표의 말이다. 광고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출판사들은 신문사 홍보에 목을 맨다. 적어도 좋은 책을 만들면 언론에서 받아줄 테니 독자에게 다가갈 최소한의 통로가 있던 셈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신문에 기사가 그럴 듯하게 나와도 도무지 책이 움직이질 않는다는 거였다. 두 가지의 사례는 매우 현실적인 상황이다. 지독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가구당 한 달 도서구입비가 1만 7,000원에 불과하다는 통계에서 확인되었다. 독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정도의 독서 수준으로 이만큼 버티는 나라가 용하다. 한동안 인문학의 위기니 하는 말들이 오갔다. 그 속내야 여러 가지 다른 뜻이 있겠지만 뒤에서 하는 말로 인문학의 위기라니? 인문학을 하는 학자들의 위기겠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추락은 학자들 사회에서 그리고 대중들 사이에서 더는 거론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깊은 나락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 인문학뿐이겠는가? 왜 그럴까? 답이 뚜렷하게 나와 있다면 애초부터 이런 문제들이 불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질과 자본에 올인하는 사회에서 돈 되지 않는 분야의 지식이란 쓸모없는 사치에 불과할 수 있다. 십수 년 동안 철저하게 책을 멀리하도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을 나와 책을 사보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무모한 것일 수 있다. 현실의 표피에 이리저리 쏠리는 대중들의 성향에서 다양한 교양과 지식을 찾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전문가와 지식인부터 책 읽어야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정말 책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학생들이나 대중들이 아니라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아닐까? 자신의 분야와 한 뼘만 달라도 까막눈이 되는 전문 지식인들을 무수히 만난다. 텍스트를 생산하는 지식인들은 정작 이웃한 분야에 어떤 텍스트가 생산되는지 관심이 없다. 더더욱 물리학자는 사회학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역사학자는 문학을 외면한다. 다른 분야에 대한 문외한을 자처하는 것이 지식인 사회의 겸양의 미덕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그걸 당연히 여기는 사회에서 누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탓할 수 있을까? 김진송 목수ㆍ문화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