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04-28]
[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어머, 이거 누가 그렸니? ‘새 친구’와 ‘미안해’를 읽어주고,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그림을 그려보자 했다. 혜린이, 서영이, 하민이, 예진이, 윤서…, ‘나’를 그리면서 아이들은 쉬지 않고 종알댔다. 나는요 원피스가 좋아요, 분홍색으로 그릴 거예요, 이건 모자예요…. 엄마들 보다 더 많은 수다를 쏟아 놓으면서 열심히 그렸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오렸다. 아예 멍석을 깔아주자. 자기 그림을 이야기방 창문에 붙이고 멋지게 소개하는 거다. 아이들은 창에 붙여놓은 자기 모습에 박수를 쳤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어머, 이거 누가 그렸니?” 감상 온 엄마들이 일제히 그림 하나에 관심을 보였다. “그건 하민이가 그렸고, 이건 혜린이고요, 이건 예진이예요.” “우와! 하민이 너무 잘했다.” 그 다음 말들이 이어져야 했는데, 혜린이 진짜 잘했다, 서영이 정말 예쁘다, 윤서 아주 멋진데, 예진이는 공주 같구나…, 그랬어야 했는데 둔한 엄마들이, 그만 하민이 그림만을 놓고 한마디씩 했다. 어쩜 이렇게 꼼꼼하게 칠했을까. 어머 신발도 그렸네, 양말도 있어. 색깔이 참 화려하네… 하면서. 그런데, 혜린이 얼굴이 슬프다. “아니야, 혜린이도 정말 잘 그렸어. 예진이도 예쁘고….”당황한 엄마들의 수습, 이미 한 발 늦었다. 혜린이는 “다시 그리고 싶어요”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혜린이는 이제 6살이지만 도서관 4년차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글 모르던 4살 때부터 그림만 보고도 이야기를 책 그대로 만들어냈다. “안돼!” “아야!” 등의 작은 대화까지 꼭 맞춰냈다. 늘 칭찬 받고 실수가 없었던 혜린이, 이제 글씨도 배우고 도화지 가득 그림도 채울 줄 아는, 자부심 강한 아이였는데 그만 마음을 다쳤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 혜린이는 하민이 그림을 흉내내려 했다. “하민이처럼 양말이랑 신발도 그릴래요.”많은 엄마들의 평가 중에서 혜린이는 ‘양말도 있고 신발도 있다’ 했던 자기 엄마의 말이 가장 크게 들렸나 보다. 혜린이는 도서관 관장님 보다 엄마한테 인정 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 그림은 솔직한 자기표현이다. 윤서의 그림은 만화처럼 명랑하다. 예진이는 행복하게 그렸다. 자기를 공주로 놓고 도취된 듯 한껏 빠져들어서. 그려진 자기 모습을 참 예뻐했다. 서영이는 세부 표현은 다 생략했지만 밝고 따뜻한 색으로 동글동글 모나지 않은 자기를 드러냈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에 제일 민감하다. 비교하지 말자. 아이들의 어떤 작품이든 충분히 칭찬해주자. 그리고 무엇보다 과정을 지켜보자.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가 보인다. 아이들의 수다를 엿듣다 보면 아이가 행복한지 알 수 있다. 김소희 어린이 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