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6-03-31]
한글 낙서로 몸살 앓는 캐나다 도서관
"대~한~민~국" 혹시 이 말을 듣고, 2002년 월드컵이나 얼마 전 막을 내렸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의 뜨거웠던 응원의 열기와 감동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부끄럽게도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광역 밴쿠버에 위치하고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한글 낙서들 중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캐나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 광역 밴쿠버에도 각 지역마다 공공 도서관들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공공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책 대여에서부터 각종 음악 CD, 영화나 다큐멘터리 DVD 또는 비디오 테이프까지 빌려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시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강연회나 작가와의 만남, 각종 생활 강좌들을 제공하며 그 지역 사회를 공동체로 엮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도서관들이 지금 무분별한 한글 낙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공공 도서관을 가보면 열람석은 물론 도서관 곳곳의 벽과 화장실에까지 한국 학생들이 남겨 놓은 낙서 자국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낙서는 열람석에 집중적으로 남겨져 있어 독서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한글 낙서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열람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글 낙서 경연 대회'가 열린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종종 자그마한 글씨로 쓰여 있는 영어 낙서 글도 있습니다만 거의 발견 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열람석은 정상적으로 앉아 독서나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낙서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비상구 옆 도서관 벽과 화장실에까지 한글 낙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낙서의 대부분은 완전히 흔적을 지우기가 거의 불가능한 볼펜이나 수정액 심지어는 유성펜으로 쓰여져 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석고 벽이나 나무로 된 열람석을 날카로운 도구로 파 글씨를 써놓은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도서관에는 낙서를 하지 말아 달라는 요지의 글을 프린트해서 각 열람석마다 붙여 놓기까지 했습니다.
도서관 직원과 사용자들 명의로 된 '협조문'에는 "도서관 열람석에 당신이 입힌 피해를 바라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뭔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이 위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Reference 창구로 오시면 메모 용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완곡히 낙서를 자제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낙서를 볼 때마다 지우개로 지워보려고 수 없이 노력을 했습니다만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열람석 표면에 볼펜이나 유성펜 등으로 쓰여진 낙서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더군요. 한국의 도서관들도 열람석마다 낙서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열람석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제가 굳이 따로 이 글에서 왜 도서관이나 기타 공공 장소에 낙서를 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광역 밴쿠버 지역을 포함해 호주나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 등지로 해마다 점점 많은 수의 초·중고생들이 어학연수나 조기 유학을 떠나고 있습니다. 조기 유학이나 어학 연수를 둘러싼 '어른들의 논쟁'을 떠나, 어린 나이에 먼 이국 땅에 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이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도서관을 찾아 책도 읽고 숙제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런 제 마음에 덧붙여 이 학생들이 단지 영어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질서 의식과 남을 배려하는 문화까지 함께 배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