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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06
    [한겨레신문 2006-03-31] 아이들에게 ‘도서관’ 숨구멍을!


  • [한겨레신문 2006-03-31]

    아이들에게 ‘도서관’ 숨구멍을!

    ▲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꼬맹이부터 고3 때까지 내내 피로한 아이들

    답답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일’뿐인데

    200명 규모 어린이도서관에 1천명 폭주한다면

    이것이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월요일의 아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화요일의 아이는 온 몸이 아름답다." 영국 동요의 한 대목이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아니 취학 이전의 꼬맹이 시절부터 고교 3년생이 될 때까지 장장 10여년 무슨무슨 학원으로, 교습소로 또 어디로 줄기차게 내몰리고 각종 과외 선생을 찾아다니느라 빡빡한 일과를 소화하고 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일주일을 노래한다면? 필시 이럴 것이다. “월요일의 아이는 피곤하고, 화요일의 아이는 졸립다. 수요일의 아이는 더 졸립다. 목요일의 아이는 눈이 무겁고 금요일의 아이는 온 몸이 무겁다.” 토요일의 아이는? “토요일의 아이는 퉁퉁 부었네”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월화수목금토는 요일만 달랐지 그날이 그날인, 다람쥐 바퀴 도는 피곤한 나날이다.

    아직은 격주제지만, 그나마 각급 학교가 이번 봄학기부터 주5일제 수업을 실시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최소한 주말 이틀만은 숨구멍 틀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극성스런 부모를 둔 아이들에겐 여전히 그 이틀의 주말도 결코 쉴 수 있는 날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목구멍 이상으로 숨구멍이 중요하다. 숨구멍이 막히면 목구멍 10개가 있어도 아무 쓸모없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른들은 숨구멍 막히면 목구멍으로 대신할 줄 알지만 아이들은 그런 기술이 충분치 못하다. 물론 이건 해부학적 진실 아닌 은유적 진실이다. 답답할 때 어른들은 목구멍으로 술이라도 부어넣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막힌 숨통을 트지 않는가. 하지만 아이들은 숨통 막힌다고 야밤에 길바닥에서 소리 지르고 술로 숨구멍을 틔울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일’ 뿐이다.

    인천 부평에서 어린이 전용도서관인 ‘부평 기적의 도서관’을 개관한 것은 지난 3월 10일 금요일이었는데 다음 날인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동안 5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어른 방문객까지 합치면 그 수는 6천명을 넘는다. 물론 개관 초여서 구경삼아 온 아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관 3주째 주말에도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하루 1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구 15만의 제천에서 지난 25일 토요일 하루 동안 제천 기적의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1,100명으로 보고되어 있다. 주5일제 실시 이전에도 주말 사용자는 많았지만 토요 휴업이 시작되면서 각지 어린이 도서관의 사용 수요는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겨우 250평 안팎의 기적의 도서관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많아야 2백 명이다. 1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몰려든다면 도서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 그러나 찾아오는 아이들을 막을 수 없고 다 수용하자니 도서관은 ‘장바닥’ 꼴이 되고, 그래서 운영자들은 쩔쩔 맨다.

    이런 사정이 지금 우리들 어른의 사회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과 유관기관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주말에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대책을 세워라, 주5일제 수업 실시에 따르는 후속 수요를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방법을 강구하라--이게 그 메시지다. 정부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전국 각지의 공공도서관 어린이실, 어린이 전용도서관, 동네 동네의 민영 작은 도서관들을 다 동원해도 폭주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인프라는 태부족이다. 정책 입안자들을 위해 귀띔하자면, 인구 5만명에 최소한 하나씩의 규모급 어린이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 어린이용 시설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전국을 통틀어 200평 규모의 어린이 전용도서관은 채 20개소가 되질 않고, 어린이를 위한 웬만큼의 전담 서비스 시설을 갖춘 공공도서관까지 다 합쳐도 그 수는 100개를 넘지 못한다. 7~8백개의 어린이 전용시설이 더 필요하다. 인구 1천만의 서울시에는 최소 2백개의 어린이 전용도서관이나 전용 시설이 필요한데, 지금 서울에 있는 어린이 전용도서관은 5개 정도이고 어린이실을 제대로 갖춘 공공도서관까지 다 합쳐야 그 수는 2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들의 각성과 인식전환, 주민을 위한 정책 수립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자치단체들의 문화행정이 보여주는 특징은 ‘허장성세’와 ‘혈세낭비’다. 돈 없다, 돈 없다 하면서도 지역마다 수백 억원씩 들여서, 심지어 1천억원이 넘게 소요된 거대 규모의 공연시설 같은 것은 열심히 지어대고 한 번에 수십억, 수백억 원이 드는 소비성 ‘축제’는 뻔질나게 조직하면서 20억원이면 해결할 어린이 도서관은 짓지 않는다. 지자체 문화정책은 주민의 일상적 삶을 개선하는 일보다는 과시효과, 전시효과, 현시효과를 노리는 이른바 ‘3시주의’에 지배되고 있다. 수없이 지적된 일이지만, 자치단체들의 ‘거대 청사’들은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보자면 거기 무슨 식민지 총독부 청사가 들어왔나 싶게 어마어마하고 으리으리하다. 그 권위주의, 과시주의, 허장성세가 촌스럽기 짝이 없고 세금낭비에 대한 무감각이 놀랍기 한이 없다.

    정부가 애쓰고 있는 소위 ‘양극화 해소’ 노력에 대해서도 한 마디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중산층을 위시한 대다수 국민들의 문화수요 부분이다. 생활지원이 필요한 불우계층에 대한 긴급 수혈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가 쌀 배달, 연탄배달, 라면배달 같은 대증처방의 수준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소득감소로 아이들에게 책 사줄 돈이 없어진 주민들과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주고 탁아소, 보육시설 같은 지원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은 자녀 양육의 책임과 경비를 들어주어 양극화의 가장 날카로운 타격지점들을 누그러뜨리는 효과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작업이다. 민간의 기부자원을 모아 요긴한 곳에 배분해주고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정부의 복권기금 분배 담당자들, 사회공헌에 나서는 민간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문화복지’의 지점이다.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에 시달릴 때에도 사람들이 시집 한 권, 음반 하나, 한 장의 그림에서 ‘행복’을 찾아내어 삶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이상한 힘을 문화는 갖고 있다.

    배고프고 병들고 지친 사람에게 문화가 무슨 소용인가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도 문화는 필요하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면 그 역도 진리다. 건강한 정신이 또한 건강한 몸을 만들므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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