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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6
    플롯(plot) - 김용석의 『서사철학』中에서

  •    '페넬로페의 베 짜기'는 분명한 음모(plot)였다. 그녀는 기만의 서사를 짜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오디세우스의 궁전을 떠나지 않던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은 각자 희망과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이야기의 형태로 갖고 있었다. 모두 나름대로 구상한 플롯(plot)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넬로페의 플롯은 구혼자들의 플롯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에 가두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나간 후 그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는 아들의 사망 소식에 애통해하다 얼마 못 가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라에르테스는 농원에 은둔했다. 페넬로세는 점점 더 집요해지는 구혼자들에게 언제 죽음을 맞게 될 지 모르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기다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보란 듯이 커다란 베틀에 올라 낮에는 열심히 베를 짰고, 밤에는 몰래 옷감 풀기를 반복했다. 구혼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안티오노스는 "페넬로페는 누구보다도 음모에 능하다"고 했다. 그녀는 청혼을 분명히 거절하지도 않고 "모든 구애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각자에게 약속을 한다"고도 했다.

       이런 능란한 계략과 술수는 수절하는 여인으로서 페넬로페를 의심하게 했다. 어떤 전설은 '페넬로페의 피륙'이 수절의 상징이 아니라 불륜을 위한 위장이라고 했다. 페넬로페는 처녀 때부터 유난히 베 짜는 일을 좋아했다. 수없이 베를 짰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그런 페넬로페의 습관은 남편 오디세우스도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방랑벽이 있는 오디세우스는 그녀의 이런 편집적 행동을 목격하는 밤이면 몰래 궁을 빠져나와 어러 날 동안 유랑길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페넬로페에게도 애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밤이 확보되었다. 페넬로페의 플롯이 남편 인생의 플롯을 조정했던 것이다.

     

     

    - 김용석. 『서사철학』. 휴머니스트, 2009. 6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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