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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22
    낮은 담·담쟁이·풍경 보이는 창… “건축은 삶이다”

  • ㆍ건축가 정기용 작품세계 ‘감응’전

    아카이브적인 전시는 자료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아 재밌기 어렵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감응 : 정기용 건축-풍토, 풍경과의 대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깬 전시다. 이 전시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건축 도면이나 모형, 자료를 단순히 모아놓지만은 않았다. 관람객이 정기용(65)이라는 한 건축가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려한 장치들이 눈에 띈다.



    2007년 서울 대학로 기용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던 건축가 정기용의 모습(왼쪽). 햇볕을 피할 곳이 없어 운동장을 잘 찾지 않는 주민들을 위해 등나무 스탠드를 만들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무주 등나무 공설운동장 스케치. 일민미술관 제공


    현재 정기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은 정기용이 만든 ‘기적의 도서관’ 속에서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즐기는지를 영상에 담았다. 도면이나 모형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생생한 공간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다가온다. 전북 무주에서 10여년간 공공건물 30여채를 지은 무주프로젝트의 일부인 무주 버스정류장도 전시장 내부에 설치물로 재구성됐다. 정류장에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보게 되는 주변 풍경 영상이 마치 실제로 버스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상큼한 음악과 함께 흘러간다. 건축가가 그러한 풍경에 어울릴, 그런 풍경을 보며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려한 버스 정류장을 지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흙건축에도 관심이 많았던 건축가와 관련, 전시장에는 흙벽이 세워졌다. 누렇고 울퉁불퉁해서 정겨운 흙 벽 위에는 애니메이션 <나무를 찾는 소녀>가 영사된다. 정기용은 평소 머릿속 자신의 이상적인 형상을 ‘소녀’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필을 든 소녀가 혼잡한 도시를 지나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정기용이 추구해왔던 건축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기용은 전시 개막일에 ‘감응’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고, 강의의 흔적은 전시장 내 칠판에 남아있다. 이 역시 마치 퍼포먼스처럼 건축가의 흔적을 남겨 글씨만으로도 여운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스케치 노트의 속을 모두 다 보여줄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트 속 지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배려도 돋보인다.

    정기용이라는 건축가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이런 전시 장치를 거치고 나면 건축물이 단지 값을 따지는 부동산이 아님을, 건축가는 단순히 공학도가 아니라 인문학자이고 사회학자이자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정기용은 “이번 전시를 통해 나라는 개인보다는 관람객이 건축과 자신과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무주프로젝트, 계원조형예술대학, 진해의 기적의 도서관, 제주 4·3공원,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 등 다양한 공공건축물, 교육시설, 주택 등을 설계했다. 공공건축을 필두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정기용의 건축은 낮은 담, 풍경이 보이는 큰 창, 담쟁이, 중정 등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건물과 건물이 이어지는 사이로 자연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실내가 바깥이 되기도, 바깥이 속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미로처럼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었고, 농부의 삶을 살고 싶어한 노 전 대통령에게는 살기에 다소 불편한 집을 지어주었으며, 웅장함을 내세우기보다 이용자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다정한 운동장을 그는 만들었다. 자연과 사람, 건축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추구한 것이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내부


    김태령 일민미술관장은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세계는 ‘건축이 삶에 스며있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어린이 도서관장님이 말씀하시길, 보통 건축가는 자기만의 예술세계가 있고 그것을 바꾸기 원하지 않는데 정작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해요. 도면을 현실화시킬 때 그런 어려움을 얘기하면 보통 건축가는 자신의 계획을 바꾸기 싫어하는데 정기용 선생님은 ‘건축은 사용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며 흔쾌히 바꿔주셨다고 합니다. 예술세계를 고집하기보다 대중의 삶이 녹아있는 건축물이 진짜 건축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한 그는 1975년 프랑스로 건너가 건축을 공부했다.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활동했고, 현재 성균관대 석좌교수, 문화연대 공공대표, 문화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는 2011년 1월30일까지. 올 초부터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됐다. (02)2020-2060

    ~건축가 정기용 작품세계 ‘감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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