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소식 > 전체
  • 5913
  • 2010-08-17
    [책읽는 경향] 밥데기 죽데기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밥데기 죽데기 | 권정생 · 바오로딸


    아름답고 깨끗하게 갚는 복수
    ~박영주 | 밤토실어린이작은도서관 관장~
    달걀을 쑥과 마늘을 넣은 솥에다 삶았습니다. 삶은 달걀 두 개를 물에다 깨끗이 씻고는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일곱 번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달걀 두 개를 정성스럽게 삼베 헝겊에 잘 싸서 할머니가 똥을 누는 뒷간 똥통에다 담갔습니다. (10~11쪽)

    원수를 갚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다 끝낸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니?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면 결국 세상은 망하고 만단다. 그러니 너희는 원수를 갚되 아름답게 깨끗하게 갚는 거야. (16쪽)

    늑대 할머니는 여관방에 누워서 곰곰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세상 모두가 함께 살아가자면 사람들 마음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잠 못 자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 밤새도록 생각했는데도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한 가지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43쪽)

    밥데기는 노란 금가루처럼 된 똥가루를 한 줌씩 꺼내어 훨훨 뿌렸습니다. (162쪽)

    서울의 모든 집에서, 아파트건, 단독 주택이건, 산동네 판잣집이건 재개발 비닐 천막집이건 달걀이 있는 집에선 모조리 병아리가 나온 것입니다. (165쪽)

    휴전선 철조망이 모두 녹아 내리고 모든 전쟁 무기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녹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 전쟁 무기만 녹아 버린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녹았습니다. … 이제 코리아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평화의 물결은 전 세계로 파도처럼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167쪽)


    늑대할머니가 달걀 귀신인 밥데기와 죽데기를 만드는 과정은 그 옛날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었던 곰이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원수를 갚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밥데기 죽데기에게 할머니는 아름답고 깨끗하게 원수를 갚으라고 한다. 이 무슨 어려운 주문인가? 우리 사회에서 아름답고 깨끗하게 갚는 복수가 과연 가능할까? 더럽고 흉측한 세상,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이 세상에 늑대할머니의 원수 갚기에서 권정생식 평화가 엿보인다.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이 승화되어 거기서 빈부의 차이 없이 병아리가 태어나고 휴전선 철조망을 녹아 내리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들 마음을 고쳐 놓아 세상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늑대할머니의 바로 그 방법이 절실히 필요할 때인 듯하다.


    박영주 | 밤토실어린이작은도서관 관장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