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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2
    [생존자-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소박한 주고받기, 다른 삶을 꿈꾸게 하다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생존자-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 테렌스 데 프레 · 서해문집


    소박한 주고받기, 다른 삶을 꿈꾸게 하다
    ~김영민 | 철학자~
    집단 강제수용소에서는 이런 본능들이 주로 선물을 주고받는 형태로 나타났다. 재소자들끼리 끊임없이 보잘것없는 조그만 물건들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기들끼리 사기를 높이는 면에서도 대단히 큰 효과가 있었을 뿐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245쪽)


    상행위에서 사랑에 이르기까지,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는 게 모짝 소비자로 변한 이 세속의 알량하고 거년스러운 욕망이자 행복의 이치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주고 얼마나 받든, 일찍이 모스(M. Mauss)나 칼 폴라니가 그 원형을 밝힌 대로 주고받기야말로 세상사의 사북을 이루는 상호작용이니, 상생과 호혜의 이치는 바로 이 소박한 주고받기를 지혜롭게 재구성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잘 받지 못하는 대로 인생은 여지없이 낭비되고 잘 주지 못하는 만큼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이 각박해진다. 그러므로, 다른 삶과 다른 희망을 꿈꾸는 자라면 반드시 다른 형식의 주고받기를 이드거니 실천하는 것으로 그 변화의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치의 절멸 수용소라는 지옥도 속에서 좀비처럼 살아가던 이들의 최소생활에서도 주기와 받기, 그리고 나누기는 교묘하게,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 ‘살아있는 죽음’의 현장 속에서 이루어진 주고받기의 사건은 삶의 조건이나 한계와 무관하게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생성되는 지점을 절박하고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줄 게 없다는 변명으로 주지 않는 자는 곧 죽은 자이며, 죽은 자라도 그가 나누며 죽은 일로 인해 우리의 기억 속에 영생한다. 죽음의 수용소 속에서도 번득였던 게 그 주고받기의 빛이라면, 그 빛은 그 어떤 세속의 어둠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영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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