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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0
    [역사가의 시간] 친북·반북 ‘어리석은 논란’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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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 창비


    친북·반북 ‘어리석은 논란’을 일깨우다
    ~이철수 | 판화가~
    조선왕조시대에는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며 당쟁이 극심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상복을 반년 입을 건지 1년 입을 건지 하는 문제를 두고 정권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사생결단이었다. …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그건 한낱 넌쎈스에 지나지 않는다. … 6·15남북공동선언 후 부쩍 심해진 ‘친북’이니 ‘반북’이니 하며 서로 헐뜯는 일도 언제쯤이나 남인 서인과 노론 소론의 다툼 같은 넌쎈스로 되고말 것인가 생각해 본다. 모르긴 해도 당쟁시대의 동인 서인보다는 말할 것 없고, 허물없이 술잔을 나누는 친탁파, 반탁파보다 더 빨리 넌쎈스가 되고말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안목이나마 가질 수 있는 것은 역사를 공부한 덕이라고 할까? (89-90쪽)

    1974년에 이미, 1945년 이후 우리사회를 ‘분단시대’라는 한마디로 규정한 역사가로서의 안목과 통찰도 놀랍지만, 날 선 이념의 긴장 위에 술기운조차 살짝 얹어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일제 말에서 시작하는 분단시대를 역사가의 자서전 형식으로 읽게 된 덕분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온 시간대와 라이브로 동시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내일이라도 마주칠지 모를 낯익은 이름도 보이는 건, 살아있는 역사를 읽는 셈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직접 거명하진 않아도, 저 인간들이 끝까지 온전할까 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보면 별것 아닐 일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현재의 질곡이, 역사적 혜안을 빌리지 못한 어리석음 탓일 거라는 반성과 함께 읽었다. 그게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 까닭 아닌가?


    이철수 |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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