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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2
    대통령 - 『페리스코프』中에서

  •     192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허버트 후버는 미국의 장래를 한껏 밝게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유세에서 "지금 미국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도 빈곤의 완전한 정복을 가까이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대공황은 그의 취임 7개월 수에 터졌다.

        후버의 재임 중 미국인의 총소득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수출입은 3분의 1 이하가 됐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25%를 기록했지만 실질 실업률은 40% 이상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후버는 낙관론을 버리지 않아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믿었고, 근본적인 실패를 고집스럽게 부인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후버의 고답적인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연금 부대' 격퇴다. 1932년 대통령선거전을 앞둔 여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병사 2만여 명이 워싱턴에 몰려들었다. 1945년부터 지급받기로 예정돼 있는 연금을 앞당겨 달라고 청원하며 대로상에 캠프를 친 그들은 연금 부대Bonus Army라 했다. 후버는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쫓아냈는데, 과잉 작전으로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얼마 후 새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연금 부대가 다시 찾아왔을 때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너를 그 캠프로 보냈다. 엘리너는 시위자들에게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줬다. "후버는 기병대를 보내줬고 루스벨트는 아내를 보내줬다"는 것이 두 대통령의 차이로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졌다.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의 '뉴딜'이 후버의 정책과 달랐던 것은 빈민 구제에 역점을 두고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꾀한 점이다. 빈민구제를 좌경화로 여기고 제도 개혁을 체제 전복으로 생각했던 후버와 달리 위기의 심도를 투철하게 인식한 것이다. 라디오방송 <노변정담Fireside Chat>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려 애쓴 것도 같은 인식에서였다. 

     

     

    - 김기협. 『페리스코프』. 서해문집, 2010. 1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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