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소식 > 전체
  • 4302
  • 2009-05-06
    [시민사회신문 2007-11-19] 다섯가지 마법의 마을도서관 주인들


  • [시민사회신문 2007-11-19]
    다섯가지 마법의 마을도서관 주인들
    아름다운재단 2007 공익상-민들레홀씨상
    철암어린이도서관 아이들과 김동찬 교사


    기남이는 사회복지사가 꿈이다. 달리기도 곧잘 한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만 빼고 매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만화방이 제일 좋다. 골고루 다양한 만화책을 읽는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올 생각이다. 기남이는 철암어린이도서관의 주인이다.

    기남이와 친구들은 모두 철암어린이도서관의 주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돈을 마련해 자신들이 책을 보고 뛰어 놀 도서관을 지었으니 말 그대로 주인이다.

    ▶ 김동찬 교사(왼쪽)와 김기남 어린이 / 전상희 기자

    “공사가 한창일 때 아이들이 구경을 가면 원래 다른 어른들은 애들은 가라고 쫓아내잖아요. 하지만 우리 도서관 건축소장님은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우리 건축주님 오셨습니까’하면서 아이들에게 건축현장을 구경시켜 주셨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잘 좀 지어주세요’라고 대답하거나 과자에 ‘고맙습니다’라고 적어 놓아두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김동찬 선생님의 말이다.

    폐광촌이 된 강원도 태백의 철암마을은 한 때 3천명이던 학생 수가 이젠 168명으로 줄어든 작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답게 아담했던 철암어린이도서관은 아이들의 놀이터, 공부방이면서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하지만 태백시의 도로확장공사와 무상 임대기간 만료 등으로 2005년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빈 공간이 생기면 이사를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전라도의 한 섬마을에서 아이들이 돈을 모금해 어린이도서관을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처 음엔 작게 시작했다. 모금함을 만들어 각자의 집에 두거나 농협 등에다가 놓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스스로 회의를 해 ‘도서관건립회’를 조직했고 피켓을 만들었다. 경로당, 시장을 찾아다니며 어른들에게 모금함을 내밀었다. 마을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일 한다며 나무라지 않고 목마르지 않냐며 음료수를 건넸다.

    도서관 자랑을 해달라고 하니 김 선생님은 신이 났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뒹굴 수 있어서 좋아요. 이전 도서관에서는 조금만 시끄러우면 바로 아래층에서 올라와 혼을 냈거든요. 이젠 뭐라고 그럴 사람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설계과정에서 비밀방, 만화방, 다락방 등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됐어요. 아이들이 정말로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죠.”

    아이들의 노력으로 석탄공사는 부지를 무상 임대해줬고, 각계의 후원금으로 건축비 2억5천만원을 모아 지난 7월 새로운 철암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나눔을 배웠다.

    “ 다 같이 모여 도서관을 청소하고 있었어요. 그 때 한 아이가 엄마의 연락을 받고 집에 가야 되는 상황이었죠. 자신이 쓸고 있던 쓰레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더니 앞에서 청소하고 있던 친구에게 ‘내가 이 쓰레기 기부할게’ 그러더라구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아이들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스스로 나눔을 즐기게 돼서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님이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 선생님의 명함에는 해리포터가 그려져 있다. 처음 철암마을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들 영화 속에서 나왔냐며 해리포터 아니냐고 별명을 지어줬다. 하지만 정작 마법을 부리는 건 아이들이다. 철암마을 아이들은 모두 다섯 가지 마법 주문을 갖고 있다. ‘인사하기, 여쭙기, 의논하기, 부탁하기, 감사하기’가 그것이다.

    “도서관을 건립하면서 마을의 진짜 주인인 아이들은 어른들을 만나 먼저 인사를 한 뒤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걸 여쭤보고 함께 의논한 후 부탁을 드리고 감사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숙해지고 마을은 조금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학교수업 때문에 기남이 혼자 어린이 대표로 참석한 시상식이라 김 선생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시상식 자리에서 철암으로 아름다운재단 간사님들이 와서 한 번 더 시상식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간사님들은 진작부터 그럴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노라 대답했다.

    철암초등학교에서 이번 달 말쯤 치러질 시상식에서 아이들은 한 번 더 자신들이 진정한 철암어린이도서관의 주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을 건립하고서도 계속 모으고 있는 기금과 함께 상금으로 또 다른 도서관을 짓자는 아이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는 이상 아이들은 철암어린이도서관 뿐 아니라 철암마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