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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0
    [은밀한 생] 억누를 수 없는 갈망… 침묵하기 위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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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은밀한 생 | 파스칼 키냐르 · 문학과지성사


    억누를 수 없는 갈망… 침묵하기 위해 쓰다
    ~박진 | 문학평론가~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결사를 구성한다.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령의 구분 없이 뒤섞이지 않음이, 결코 서로 만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그들의 선택은 출판업자의, 즉 시장의 선택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수들의, 즉 코드의 선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의, 즉 권력의 선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 (216-17쪽)

    나는 이 지면을 인용문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매혹과 갈망, 침묵과 언어,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고요하고도 숨 가쁜 단상들로. 가장 아름답고 강렬한 페이지를 골라야 했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또 다른 문장들이 먼저 고른 인용문을 지워버리게 했다.

    결국 나는 이 책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독자인지 말해주는 한 대목을 인용하며 책을 덮는다. 소설이라는 이름표에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은 뜻밖에 아주 지독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섬광처럼 한 여자에게 매혹됐고, 그 사랑을 오직 둘만의 비밀로 남겨둬야 했던 한 남자는 억누를 수 없는 열정과 갈망을 이 페이지들 속에 꼭꼭 숨긴다. 이 책은 침묵하기 위한 글쓰기이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내지르는 비명일지 모른다.


    박진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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