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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독서의 풀뿌리, 독서클럽

  • [경향신문 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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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2. 독서의 풀뿌리, 독서클럽

    최근 다양한 분야, 계층에서 독서 모임들이 움을 트고 있다.

    사회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전국적 모임에서부터 지역내 아파트 단지, 회사내 독서 동아리 등 시민들 스스로 모여 운영하는 독서클럽들이다. “이제야 시작”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지만 정부관련 기관이 주도한 과거의 모임들과 달리 이 자발적 모임은 ‘책 읽는 대한민국’의 싱싱한 뿌리가 될 전망이다.

    독서·출판계 전문가 사이에 꽤 이름난 독서클럽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회원들이 전하는 독서모임의 힘을 들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독서모임은 나 자신의 하는 일, 일상 생활, 나아가 삶 전체를 풍부하게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서울 을지로 1가 하나은행 본점 21층 강당.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MBS”로 불리는 ‘경영자 독서 모임(Management Book Society)’의 회원들이다.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서 바쁜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각 부문의 지도층 인사들이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생활하는 이들이 많게는 80여명까지 모여 책을 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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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자 독서모임(MBS) 회원들이 초빙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토론하고 있다.

    MBS는 1995년 서울대 조동성 교수(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가 친하게 지내는 CEO들을 만나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됐다. 독서를 통한 경영능력과 지적 수준의 향상, 문화 마인드의 필요성 등에 공감했고 ‘사랑방 수준’의 독서 모임이 진행됐다. 당시 멤버는 남궁석 전 정통부장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백낙환 인제대백병원 이사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등 10여명.

    조교수는 “알음알음 모임의 긍정적 효과가 알려졌다”며 “10년이 지난 지금은 출석회원과 통신회원을 합쳐 300명 가까이 된다”고 전한다. MBS는 이제 산업정책연구원의 주요 교육프로그램의 하나로 성장, 6개월 단위의 기수별로 회원을 모집한다. 지난 21일로 19기가 모임을 마감했고, 지금은 5월2일부터 진행될 20기 회원을 모집 중이다.

    회원들은 6개월간 매주 1권씩 20여권의 책을 읽는다. 월요일 모임은 선정한 책의 저자와 관련 전문가가 초청돼 2시간여에 걸친 강의와 토론을 벌인다. 조교수 등으로 구성된 도서선정위원회에서 엄선하는 책은 경제·경영서가 중심이 돼 인문·예술·과학 등 다양하다. 조교수는 “저자를 직접 만나 책의 내용을 쉽고도 깊게 이해하고,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지혜로 만드는 것이 모임의 강점”이라고 강조한다. 흔히들 사교모임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모임 뒤의 2차 뒤풀이가 아예 없는 등 철저한 스터디그룹을 지향한다.

    MBS를 접하면서 경영에 독서를 접목시킨 경우도 많다. 안국약품 어진 사장이 대표적. 98년 사장 취임 이후 지속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MBS에 참여한 어사장은 사내에 ‘경영독서모임’ 동아리 운영, 독서 모임에서 나오는 각종 아이디어를 회사업무에 적용하고 사내 독후감 게재 및 관련 이벤트 개최 등을 하고 있다. 어사장은 “모임을 통해 문제 해결 및 의사결정의 단서가 되는 정보 및 영감을 얻는다”며 “개인적으로는 제한된 주제의 책만 읽다가 MBS를 만나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통해 시야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MBS의 효과에 대한 믿음으로 아버지가 딸에게 모임 참여를 권해 부녀가 함께 참석하는 사례도 있다. 창립 멤버인 백낙환 이사장은 98년부터 백수경 인제대 교수와 모임에 늘 동반한다. 백교수는 “처음엔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생각으로 참석해 열의가 적었다”며 “이제는 자발적으로 매주 참석하는 편”이라고 전한다. 백교수는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도 보게 되고, 생각이 다른 저자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얻는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라며 “재충전의 기회이자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실제적인 도움을 얻는다”고 만족해 한다.

    ◇교양과학으로 자연, 삶을 이해하기=대부분 “어렵다”며 거부하는 과학도서를 만 6년째 읽어오는 독서클럽이 있다. 99년 5월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 독서토론 모임을 가진 ‘과학독서아카데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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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독서 아카데미 회원들이 충주댐 발전소를 현장 탐방한 모습.

    이용수 과학독서아카데미 이사장(서울낫도대표)이 과학책 읽기를 통해 창조, 합리, 능률의 과학정신을 길러보자며 시작된 아카데미는 매월 셋째 화요일 저녁에 모인다.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과학을 알고 싶은 다양한 분야의 회원들은 매월 선정된 교양과학서를 읽고 저자나 번역자를 초청해 강의와 토론을 갖는다.

    지난 15일 있은 72회 모임에서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를 놓고 저자인 전영우 국민대 교수는 물론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가 초빙됐다.

    아카데미 부회장인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첨단과학의 심오한 의미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각, 그 시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배우고자 한다”며 “교양과학서를 통해 현대 시민이라면 꼭 갖춰야 할 필수지식을 얻는 모임”이라고 전한다. 과학과 연관된 회원들로 시작된 모임은 이제 시인, 주부, 회사원 등 각계각층에서 50여명이 모이고 등록회원만도 200여명이다.

    모임이 활성화되자 회원들은 1년에 2번씩 과학 현장을 탐방한다. 원자력발전소, 제철소, 바다목장, 천문대, 해인사 장경각 등. 탐방여행은 실제로 과학이 어떻게 응용되는지, 과학의 중요성, 회원들의 단합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이교수는 “독서모임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운영진의 프로그램 개발이나 회원에 대한 철저한 운영관리, 회원간 조율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전한다.

    아카데미 회원인 도서출판 지성사의 이원중 사장은 “전문가들을 통해 과학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연세드신 분들의 경험과 경륜을 얻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회원들은 그동안 모임에서 얻은 느낌을 모아 ‘과학책 읽는 소리’(지성사)라는 단행본을 출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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