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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06
    [영남일보 2006-06-27] 희망의 '풀뿌리 도서관'


  • [영남일보 2006-06-27]

    희망의 '풀뿌리 도서관'

    주민의 힘으로 마을에 만든 작은 도서관 독서 인구 확대는 물론 문화·정보센터 역할까지 재정적 뒷받침 절실

    컴퓨터의 황제로 불리는 빌 게이츠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며 책과 도서관에 대한 사랑을 피력한 바 있다. 빌 게이츠의 성공신화가 말해주듯 도서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때문에 공공도서관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선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직접 소형 도서관을 운영, 마을에 책 읽는 문화를 전파하기도 한다. 주민 밀착형 도서관의 활동 모습을 통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독서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대구 동구 지묘동 '한들도서관'

    순순하게 지역 주민의 힘으로 건립, 운영되는 대구시 동구 지묘동 한들마을도서관(관장 유정실)은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지난달 26일 주민과 회원 150여명이 참석, 개관 1주년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데 이어, 20일엔 대구시로부터 공공사립도서관으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대구지역에선 달서구 새벗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다. 사립도서관으로 등록하려면, 도서관 면적 80평에다 장서 3천권, 정규 사서 3명 이상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한들도서관은 개관 1년 만에 이 같은 조건을 갖추고, 이제 정식 도서관이라는 어엿한 '명함'을 갖게 됐다. 내부 살림은 1년 만에 더욱 탄탄해졌다. 연간 회비(1만원)를 내는 회원만 1천200여명으로, 개관 초기 620명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가구당 1명만 회원 가입하는 셈치고 적지 않은 규모다. 장서도 7천200권으로 1년새 2천400권이 증가했다. 또 운영팀을 포함한 자원봉사자 40여명, 자문위원이 18명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도 하루 평균 70~80명으로 웬만한 공공도서관 규모 못지않다. 한들도서관이 이처럼 빨리 자리를 잡은 것은 주민의 노력 덕분이다.

    지난해 2월 인근 지묘초등 교장을 지낸 뒤 정년퇴임한 유정실 관장이 사재 1천만원을 내놔 도서관 건립의 씨를 뿌렸고, 공산농협에서 공간을 무상 임대해 줬다. 주민들도 책을 기증하고, 경비를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한들도서관이 들어서자, 가장 반긴 주민은 바로 유치원 및 초·중학생 자녀를 가진 학부모들이다. 변변한 서점조차 없어, 책 한권을 구입하기 위해 도심의 대형서점까지 나가야하는 어려움을 겪던 주민들로서는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들도서관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탕으로 책을 읽는 공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화·정보센터의 역할을 맡게 됐다. 주민을 대상으로 수요독서회를 결성, 매달 한차례 지정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눈다. 또 자녀독서지도 강좌를 수료한 주민들이 초등학생을 위해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교실'을 매주 연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실, 중학생 일어교실 등 다양한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방학땐 초·중학생 독서교육을 실시한다. 지난 겨울방학때 독서교실에 참가한 채지애양(중3년)은 "책도 읽고 방학 숙제인 독후감상문도 어렵지 않게 쓰는 등 독서교실 덕분에 방학을 보람있게 보냈다"고 도서관 회보에 기고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도서관 덕분에 책과 가까이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무척 자긍심을 갖는다. 실제로 지난 1년새 이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독서량이 크게 늘었다. 하루 대출되는 책만 200~300권. 이 가운데 일반인용 책은 30% 정도다. 도서관 측은 주민들의 독서의욕을 높이기 위해 6개월마다 가장 책을 많이 읽은 10가족을 선정한다. 도서관 자원봉사자 강해윤씨(35)는 "아이들이 책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도 도서관을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딸아이(7)에게 한글을 따로 가르쳐 주지 않고, 도서관에서 틈틈이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게 됐다"며 독서와 도서관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이제는 지묘동을 넘어 백안·공산동 지역 주민들도 소문을 듣고 도서관을 찾는다. 유 관장은 "주민들의 힘으로 운영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하지만 도서관을 아껴주는 이들이 있기에 도서관과 함께 주민들의 삶 또한 풍부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북구 관음동 '도토리어린이도서관'

    지난 21일 오후 대구시 북구 관음동 주택가의 한 상가 2층. 10평 규모의 작은 도서관에는 5명의 초등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 바로 북구시민연대가 지난해 4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도토리어린이 도서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초등학생과 부모들이 읽을 수 있는 책 3천여권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가을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의 작은도서관 지원대상으로 선정돼 300만원 상당의 책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생은 누구나 무료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책을 빌려보고 싶은 학생은 연간 회비 1만원을 내면 대출회원이 된다. 현재 대출회원은 40여명, 후원회원은 20여명이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10여명, 대출되는 책은 20~30권이다. 이영재 관장(40)은 "강북지역 인구가 30만명에 육박하고 이 가운데 학생이 50%를 차지하지만, 공공도서관이 하나도 없을 만큼 문화 사각지대"라며 "보다 못해 시민단체가 나서서 이렇게 소형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도토리도서관이 지난 1년간 이 지역 학생들의 독서문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독서 열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서민들이 주로 사는 이 지역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책을 빌려볼 만한 곳이 학교 도서관과 도토리도서관 단 두 곳 뿐이다.

    이 관장은 "주민밀착형 작은 도서관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재정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토리도서관의 경우 재정적으로 너무 열악하다보니, 신간구입이나 각종 독서프로그램 진행 등을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자원 봉사자인 최해경씨(32)는 "아이들이 비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고, 부모 역시 이곳에서 책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북구시민연대는 강북지역 동네마다 어린이도서관을 세우기로 하고, 올하반기에 동·서변동이나 동천동에 제2호 도서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윤철희기자 fehy@yeongnam.com

    사진 박진관 기자 pajika@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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