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1911~1995)는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환자(患者)의 '환'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뤄져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야 한다는 뜻이다. 환자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병원은 아픈 몸을 고치는 곳이지만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도 될 수 있다. 살다 보면 한번쯤은 환자 또는 보호자로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ㅏ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책 읽는 병원' 프로젝트는 그런 이들에게 무료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는 방법으로 독서를 권한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별관 1층의 책 읽는 병원 1호관. 일년에 한 번 갑상샘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는 송윤주 씨(45.여)는 건강서적 5,6권을 쌓아 두고 읽고 있었다. 그는 "1년 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지만 책이 많지 않아 아쉬웟다"며 "외래 환자들이 대기시간을 보내기에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66㎡ 규모인 이곳에서는 2700여 권의 장서가 있다. 하루 평균 100여 명이 다녀간다. 원래는 병원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공간으로 검은색 철제 프레임으로 덮인 칙칙한 분위기엿다. 환자들만을 위한 독서공간은 없었고 지하에만 서고를 운영했다. 병원이 '쉼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2010년 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6차례 도서 기획전을 열어 수익금 1700만 원으로 신간 도서들을 구입했다. 산듯한 인테리어도 병원 이미지 개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김명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팀장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 치유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2호관으로 개관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함춘서재. 19일 오후 이곳은 환자복을 입은 채 소설을 고르는 이들과 책을 읽으러 온 외래 환자들로 붐볐다. 위 수술로 1주일간 입원하고 있다는 박석주 씨(48)는 "무료할 대마다 이곳에 내려와서 문학 작품을 고른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의 홍보와 사서 업무를 겸하고 있는 맹현정씨는 "이전에는 어린이병원에 있던 도서실과 일반 병동이 멀어 이동도서실을 운영했지만 같은 건물로 옮긴 뒤 하루 200~300명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 대출순위를 살펴본 결과 상위 300권 안에 문학이 18권이었다. '생로병사의 비밀',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 등 의학 관련 도서가 5권으로 뒤를 이었다.
책 읽는 병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도서관담당 이수평 간사는 "오래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TV에 질려 있다가 모처럼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환자를 돌보다 지친 보호자들도 책을 빌려 가서 읽으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