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교육과학기술부는 과도한 개인 신상 정보와 도서관 이용 및 독서활동 기록을 누적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시행을 철회하고, 독서교육의 새 판을 짜라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관리하고 있는 학교도서관지원시스템(DLS: Digital Library System)이 해킹당해 수십만 학생의 개인정보가 영리 목적에 이용되었고, 전체 636만여 학생과 교직원 및 학부모의 신상정보가 영리 사업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리시스템의 허점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지적된 바 있고, 이번 사건이 단순히 학생정보 유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교과부가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보안 강화뿐이다. 그러나 도서관 운영을 자원봉사자나 비정규직이 담당하고 있는 개별 학교에서의 정보유출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사서 없는 도서관’이라는 비정상적인 독서 현장을 개선하지 않고는 제아무리 강화된 보안 시스템도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교과부는 지난 6월 15일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에게 제공함으로써 대학입시의 자료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2010학년 2학기부터 시행하게 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기왕에 존재하던 부산광역시교육청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과 학교도서관의 독서활동 운영시스템인 ‘학교도서관지원시스템’을 연계하고 기능을 통합한 것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모든 학생들의 독서이력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 국민의 도서 대출 현황과 독서활동에 대하여 누적된 기록을 국가가 관리ㆍ감독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발상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토대인 지적 자유(intellectual freedom)와 사생활(privacy) 보호에 대한 심각한 침해일 뿐 아니라, 이 누적된 기록과 정보가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이미 거듭 지적되었던 바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교육 당국이 범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의 실례가 되고 말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의 독서 이력을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한심함을 넘어 끔찍하기까지 하다. ‘나는 내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입증하듯, 우리가 읽은 책이야말로, 우리의 생각과 정서의 요체다. 따라서 공교육의 전 기간에 걸친 독서활동의 궤적을 기록ㆍ관리ㆍ활용하겠다는 발상은 CCTV로 안방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과 다름없으며, 개인의 일기장을 낱낱이 살펴보고 대학 입학 자격을 주겠다는 발상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기록하고자 한다면, 이는 엄격히 담당교사와 단위학교에 일임해야 하며,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단위 서버를 통한 정보의 집중과 누적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과도한 개인 신상 정보와 도서관 이용 및 독서기록을 누적하는 DLS와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누구를 위해서, 왜 이처럼 많은 학생들의 독서활동 기록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인가?
사실 교과부는 일제고사로 지칭되는 성취도검사를 통해 획일적으로, 또 무차별적으로 학생과 학교를 일렬로 줄 세우겠다고 작심한 바 있다. 그러니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 과연 우리 교육의 본질과 지향에 부응하는가, 어린이ㆍ청소년들의 바람직한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로지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입시제도와 연계시키면 되리라는 입시지상주의적 발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서는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어린이ㆍ청소년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이다. 또한, 독서는 고도의 문화적인 활동이다. 그러기에 독서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입시를 빌미로 반강제로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은 독서에 대한 흥미를 진작시키기는커녕 학생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더욱이 독서퀴즈나 독서감상문을 비롯한 강제된 독서인증의 방안들은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경험과 느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낱낱의 조각난 지식을 암기하고 내키지 않는 독서 후 활동을 하게 만듦으로써 자율적인 ‘생애의 독자’로 성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활동의 과정과 결과를 대학입시와 연결시키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반문화적ㆍ반교육적이다.
또한 대학이 정한 도서목록이나 학교 단위로 부과된 권장도서만을 읽게 만듦으로써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 도 저버리게 된다. 독서문화ㆍ도서관문화ㆍ출판문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성취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이는 생물의 종 다양성과 다를 바 없는 다양성을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이든 초중학교든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상황은 우리나라 독서문화ㆍ도서관문화ㆍ출판문화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공교육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독서활동의 전 과정을 대학입시와 연동시키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독서활동은 문화자본의 소유와 그 정도에 따라 확연히 차별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독서 환경과 그에 따른 능력 및 활동을 대학입시와 연결시키는 것은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불평등을 학력의 불평등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운위하면서, 마음의 양식인 독서에 관해서는 불평등을 방치 혹은 장려하겠다는 것인가.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교과부의 ‘독서교육지원종합시스템’이 담고 있는 반교육적ㆍ반민주적ㆍ반인권적 독서교육을 당장 철회하고, 학생들의 진정한 독서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교과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시행을 즉각 철회하라.
1.교과부는 자율성ㆍ다양성ㆍ형평성 등 독서활동의 기본 철학을 훼손하지 말라.
1.교과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서 드러난 개인정보유출에 대해 엄정히 사과하라.
1.교과부는 독서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라.
1.교과부는 사서교사와 독서교사의 양성과 배치를 위한 획기적인 지원을 실행하라.
2010년 10월 6일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참여단체(가나다순)
겨레아동문학연구회, 더나은세상을꿈꾸는어린이책작가모임, 문화연대,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책시민연대, 작은실천에서시작하는어린이책진보모임, 전국교과모임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사)참교육학부모회,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학교도서관저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한국작가회의
※첨부파일 : 성명서_2010-10-06.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