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소식 > 전체
  • 5858
  • 2010-06-03
    「안티라망」中에서

  •    나는 모를 일이다. 왜 세상은 한 사람이 웃으면 다른 사람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와야 하는지를. 남자는 나를 휠체어에 태운 채 방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열리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가구와 살림살이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 보였다. 그리고 거실 한 벽에는 타다 만 가족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남자는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 위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액자가 있었는데 유리는 깨져 있었고, 뒤의 글자도 불에 타서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까지 새겨 있었다. 불에 탄 흔적 말고는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때와 다른 것은 다만 피냄새만 없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많이 본 듯한 집 안을 보면서 태어났을 나의 아기가 보고 싶었다.

       나는 순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을? 또 누구에게?

       그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만 할 줄 알고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나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여태껏 내 똥과 오줌을 치우며 나를 보살펴준 것처럼 돌봐줄 것인가? 왜 세상은 내 생각과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한 일이라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었는데, 왜 나는 다시 이 곳에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면 남자는 나를 용서해줄 것인가? 삶이란 게 고작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리고 이성적인 최선의 선택이란 게 결국 이기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어째서 죽음은 삶을 의식하지 못하고 삶의 논리만 이 세상에 가득한 것인가.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신은 있으라. 신은 있으라. 제발 신은 있으라. 부디, 부디 신은 있으라.

     

     

     

    - 박성원. 「안티라망」. 김훈 외 9인.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랜덤하우스중앙, 2005. 186-7쪽.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