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부자들과 비교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엘리트주의자들의 그러한 '선험적' 주장은 사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엘리트주의자들의 '충고' 때문에 빈민들은 인문학을 공부할 기회를 차단당했고, 그 결과 정치적 삶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효과적인 길을 봉쇄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면 참으로 공정하지 못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견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예제도와 그것에 기초한 조직적 억압 상황에서 작동했던 무력의 포위망 속에서도 미국 흑인들은 인문학을 공부할 방법을 찾아냈고, 정치적 삶을 발전시켰으며, 시민권 회복을 위한 숭고한 운동을 통해서 자신들을 속박했던 것들을 타파해나갔다. 인문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고병현 외 2인 역. 이매진, 2009. 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