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영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비록 잡동사니들 속에서 끄집어 낸 한 뭉텅이 걸레뭉치 같기는 할망정 그래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팔다리는 그나마 온전하였다. 꼭대기 층에 살았던 덕분인지도 모른다. 말할 것도 없이, 아래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더 끔찍한 상태였다. 구조대원들이 얽히고설킨 건축자재들 사이에서 그의 시신을 끌어내어 불볕더위 속에 잠시 방치해둔 사이, 구경꾼들은 그 불행한 사내의 얼굴을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몹시 초라하고 거의 불결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나 현관 앞에서 또는 마을 슈퍼나 버스 정류소 같은 데서 일쑤 마주치곤 했던 그런 얼굴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였다. 여자는 울부짖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담한 태도도 물론 아니었다. 단지, 사자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담은 손길로 하염없이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하였다.
- 이동하. 「누가 그를 기억하랴 」.『우렁각시는 알까?』. 현대문학, 2007. 17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