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되.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아버지가 자신을 비웃듯 입 끝을 치켜올렸다. 그런 식으로 말할 주른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지로는 놀랐다. 누나도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내리뜨고 웃었다. "자자, 아버지는 내일을 준비해야 하니까 애들은 어서어서 요다 할아버지네 집에 가셔." 일어서서 찻잔을 치우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누나가 방바닥에 큰대자로 누웠다. "천장, 뻥 뚫려 버렸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로는 모모코를 마루까지 질질 끌고가 신발을 신겼다. 모모코는 인형처럼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대로 떠메고 나가 경운기 짐칸에 실었다.
세 사람 분의 이불도 옮겼다. 운전석에는 누나가 앉았다. "이런 걸 운전하는 날이 올 줄이야..."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집을 뒤로 했다. 지로는 이불과 함께 짐칸에 누웠다. 덜컹덜컹 경운기가 달렸다.
뱃속의 벌레...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칼날을 벼리고 저항에 나섰다. 도저히 좋은 결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체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파이파티로마가 있으면 좋겠다. 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곳이라면 아버지도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하테루마 저 앞의 비밀스러운 낙원....
하늘에서는 별이 빛났다.
-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양윤옥 역. 은행나무, 2006. 2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