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역(translat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편으로는 '전통'(tradition), 다른 한편으로는 '배반'(betrayal)과 연관되어 있다. 이탈리아어의 트라두토레(traduttore, 번역자), 드라디로레(tradirore, 반역자)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번역이라는 일에는 배신이라는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략] 번역에 관한 고전적 사고에서는 기표가 아니라 기의가 우선시된다고 존슨은 기술하고 있다. "텍스트에 대한 충실함은 의미론적인 대요(大要)에 대한 충실함을 뜻하며 전달수단의 구속에서 기인하는 간섭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어왔다. 다시 말하면 번역이란 언제나 의미의 번역이었던 것이다." (273-4쪽)
2.
번역은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이차적인가?"라는 언어의 존재론적 서열을 즉각적으로 문제 삼는 활동이기 때문에 기원과 파생물에 관한 가장 오래된 편견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예컨대 번역을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번역은 좀더 '오리지널' 같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오리지널'은 그것이 번역된 언어와는 다른데도? '오리지널'과 닮았다는 것은 번역이 '오리지널'과 닮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된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으면 번역은 그것이 번역되는 언어에 보다 가까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일까? 그럴 경우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은 '기원'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경멸조로 "이것은 번역투다"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오리지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그것이 번역된 것임을 알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오리지널'이 아니라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두 갈래로 나뉜 모든 의미작용과정처럼, 번역은 '오리지널'이라는 개념, '오리지널'과 그 '파생물'의 관계,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요구가 철저하게 재조사되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275쪽)
- 레이 초우. 『원시적 열정』. 정재서 역. 이산,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