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처음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여신이 생명의 모태로 숭배받던 원시 모권사회의 흔적이다. 이는 인도-유럽어족이 그리스에 이주하기 전에 그리스에 살던 선주민의 펠라스고이 신화에서 태초에 만물의 어머니인 에우리노메 여신이 오피온이라는 뱀과 어우러져 우주의 알을 낳았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가이아 중심의 모권제사회는 기원전 3천 년에서 2천 년 사이에 인도-유럽어족인 그리스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부신(남신)들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한 유일 여신인 모신은 처녀수태로 우주에 생명체를 탄생시킨 강력한 창조신으로서 생명-죽음-부활(하늘-대지-지하)의 기능을 가지고, 처녀-어머니-노파의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그 뒤 모권신화에 곡물과 대지가 첨가된 것은 모든 고대 농경사회의 공통된 흔적이다. 그런 신화의 모신은 구석기시대부터 숭배된 흔적이 남아 있고, 신석기시대에는 동물사육과 식물재배가 시작되어 다산과 풍요, 그리고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모신이 더욱더 숭상되었다. 이러한 모신숭배는 고대 그리스를 포함한 남동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다. 모신의 상징은 뱀, 나무, 달 등이었고 그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이아였다.
- 박홍규. 『그리스 귀신 죽이기』. 생각의 나무, 2009. 9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