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모순의 하나는, 한편에서는 평등 및 인간적인 정(情)으로 진하게 어우러진 '공동체 의식'과, 다른 한편에서는 불평등과 비인간적인 상하 관계로 잘 길들여진 '위계질서'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는 국가의 관료제도 뿐만 아니라 기업, 언론, 교육기관 등등 사회 구석구석마다 속속들이 똬리를 틀고 박혀있다. 이 완강한 위계질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공동체적 단합을 뿌리째 뒤흔들어놓는 병원체로 암약한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는 '이웃사촌(공동체 의식)'과 '양반·상놈(위계질서)'이 더불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박호성. 『공동체론』. 효형출판, 2009.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