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나바호는 아메리칸 인디언 가운데 가장 '미국적'이었다. 이주민이고, 필요한 것은 뭐든 즉석에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고, 잡종이었다. 유동적이고 활동적이며 자기들 땅의 경계 안에 머무르면서도 최대한 널리 퍼져 살려고 하는 이들이었다. 다른 문화의 정수를 흡수하고 맘에 드는 것을 받아들여 자기들에게 맞게 개조했다.
그리고 이들은 뭐든 끝마치는 법이 없었다. 나바호는 바구니건, 담요건, 노래건, 이야기건 마무리 짓는 것을 싫어했다. 자기들이 만든 물건이 너무 완벽하거나 깔끔히 마무리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분명한 마무리는 만든 사람의 정신을 속박하고 작품에서 활기를 빼앗았다. 그래서 문건이 또 하루 더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조그만 빈틈이나 모자란 부분, 의도적인 공백을 남겼다. 나바호에게 완결이란 질식과 같았다. 미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나바호는 늘 빈틈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나바호 담요를 만들 때에는 그 물건이 숨 쉴 수 있도록 일부러 눈에 잘 띄지 않게 불완전한 부분을 남긴다. 가운데에서 시작하여 가장자리까지 뻐는 가는 선이 있고 가장자리에 실 한 가닥이 나와 있기도 하다. 나바호들은 이런 의도적인 결함을 '정신의 출구'라고 부른다.
습격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바호 전사들은 다음 계절을 염두에 두고 에스파냐 정착지에서 양을 깡그리 쓸어가지 않도록 주의했다. 암양과 숫양 몇 마리를 꼭 남겨서 이듬해에 새로 양 떼가 생겨 다시 훔쳐갈 수 있게끔 했다.
- 햄튼 사이즈. 『피와 천둥의 시대』. 홍한별 역. 갈라파고스, 2009. 4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