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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23
    [한겨레신문 2006-05-14] “책은 내 짝꿍” 외톨이소녀 활짝 웃다

  • “책은 내 짝꿍” 외톨이소녀 활짝 웃다 팔 다리 장애 15살 소근이
    “괜찮아, 넌 할수 있어”
    책의 속삭임에 자신감 백배
    도우며 사랑하며 놀라운 변화

     

    ?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방소근(맨 오른쪽)양이 좋아하는 책들을 챙겨 서울 봉천동 자신의 집 마당으로 나와 앉자 동네 개구쟁이 친구들이 모여 들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송이가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는 창간 18돌을 맞아 아이들과 여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을 찾아본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행복해질 때 우리 사회는 한결 살 만하게 되리란 믿음에서다. 그 첫번째로 아이들에게 책을 줄 것을 제안한다. 가난한 아이도 장애를 지닌 아이도 책과 만나면 꿈을 갖게 된다. 책을 통해 장애의 상처를 딛고 세상 밖으로 나온 방소근양의 이야기를 실은 이유다.

    중학교 3학년생인 소근이는 우리집 예쁜 맏딸입니다. 피아노를 곧잘 치고 서예와 문인화 그리기도 좋아하는 꿈 많은 열다섯살 아가씨에요.

    소근이는 날 때부터 두개골 뼈가 모자라 오른쪽 이마 위에 뇌가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어요. 왼쪽 팔다리를 움직이기가 힘들고, 왼손은 손가락이 없었어요. 오른손도 가운데 손가락 세 개가 붙어 분리수술을 받았습니다.

    소근이의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장애를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급식을 대신 받아주는 소근이를 ‘공주’라며 외면했지요. 소근이는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 문앞에서 선생님만 기다리던 ‘왕따’ 소녀였답니다.

    그런 소근이가 요즘 웃음이 많아졌어요. 지난해 태어나 처음 읽기 시작한 책이 아이를 바꿨어요. 국어 선생님이 좋아 책읽기 숙제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독서인데 소근이는 벌써 책을 스무권 넘게 읽었어요.

    소근이가 제일 좋아하는 〈괜찮아〉는 소아마비 장애아인 동구를 엄마 없는 아이 영석이가 업고 집으로 가는 내용이지요. 국어공책을 몰래 들여다보니, “친구를 도와주는 마음이 좋다”고 썼더군요. 말도 어눌하고 몸에 늘 냄새가 나는 왕따 학생 최영대의 이야기인 〈내 짝꿍 최영대〉도 좋아해요. 동구와 영대를 보면서,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자기 처지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것 같아요.

    소근이는 책을 읽으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불편한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었을텐데, 스물다섯권이나 읽어냈으니 자신감이 붙은 거죠. 국어 공책을 보니 “12살까지 살 거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산 것은 가족들 덕분이다”라며 고마워하고, “나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앞으로 재미있게 학교생활하고 따돌림 당하지 않게 친구들과 같이 도와가며 살 것이다”라고 다짐했더군요.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교과서 읽는 것도 두려워하던 아이가 올해 초엔 교회의 유치반 보조교사로 나섰고, 얼마 전에는 성가대로까지 ‘데뷔’ 해서 가족들을 또다시 놀라게 했답니다.

    지난 1년 동안 소근이는 부쩍 컸어요. 책을 통해 자기를 긍정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된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첫 발짝을 내딛었으니, 좀 있으면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겠죠. 소근이의 올해가 더욱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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