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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07
    [오마이뉴스 08-02-09] 동남아 간다고요? 책 한권 사오세요

  • [오마이뉴스 2008-02-09]
    동남아 간다고요? 책 한권 사오세요?
    [탐방] 13개국 6천권, 이주노동자 위한 '꼬마도서관'?



    ▲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3개국 6천여 권의 책이 구비돼 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강남시장 끝머리, 이곳에 자리한 '꼬마도서관'은 돌 틈 사이 핀 들꽃같은 책방이다.?

    재래 시장통의 들쑥날쑥 간판 사이 숨어 있어 지나치기 일쑤지만, 마음 기울여 발견하면 쉽사리 지나치기 어렵다. 원래 '책과 사람'만한 풍경이 없는 데다 이색문화가 어우러져 향기 또한 그윽하다.?

    꼬마도서관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대표 이란주)가 운영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도서관이다.?

    이 곳에는 네팔·베트남·파키스탄·태국 등 12개국과 우리나라 책을 포함해 6000여 권이 구비돼 있다. 이주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 책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1월의 마지막 날, 꼬마도서관을 찾았다.

    "책도 있고 친구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사랑방

    "이주노동자가 책을 다 보느냐고 의아해하세요. '이주노동자' 하면 대개가 일만 하는 줄 알죠. 조금 나은 경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인입니다. 자기 나라를 떠나서 일하는 것뿐이죠. 삶의 한 부분으로 노동을 하는 거고, 당연히 여가를 즐기고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권리가 있죠."?

    상임일꾼 신순영씨는 꼬마도서관을 '이주노동자의 사랑방'이라고 소개했다. 주 이용자는 도당동 근처에 밀집한 중소업체 이주노동자들이다. 가끔 멀리 평택이나 구리, 일산에서 오는 이들도 있다. 몰라서 못 올 뿐 일단 알면 한달음에 달려온다. 다음번에는 친구를 데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꾸준하다.?

    꼬마도서관은 공장의 잔업이 없는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 평소엔 6시까지 문을 연다. 이용자가 평일에는 십여 명이지만 주말이면 몇 배로 늘어난다. '인도네시아 3인방' '태국 3인방' 등 단골 이용자도 있다고.?

    "최근에는 국제결혼이 늘면서 2세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러 오기도 하고요. 도서관이니까 책 나눔이 중심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좀 더 애틋하세요. 시간 나면 갈 곳이 있고 또 찾아가면 친구들이 있고 자국의 책이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과 위안을 얻으시거든요. 매일 문 닫는 시간이면 와서 돕고 가는 분도 있어요."

    눈물겨운 '찾아가는 도서관' 시절?
    ▲ 부천 강남시장에 자리한 꼬마도서관. 이주노동자들의 사랑방이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꼬마도서관


    이주노동자의 든든한 의지처가 된 꼬마도서관은 지난 2005년에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시작됐다. 책꽂이에 네팔·태국 등 5개국 책 열댓 권이 전부였다.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등 문제가 있어 사무실을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 자연스레 이용했다.?

    "그 분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들렀다가 자국어로 된 책을 보고는 표정이 밝아지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찾아가는 도서관'으로 운영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봉사자들과 함께 수레에 책을 싣고 인근 공장을 돌았지요. 공장관리자와 면담을 하고 국가별 책 리스트를 이주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신청을 받아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찾아가는 도서관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공장 관리자들은 "그 사람들이 무슨 책을 보느냐"며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다반사였다. 경비실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근로 조건도 문제였다. 대부분 하루에 12~13시간 씩 일하고 잔업은 기본에 주야간 교대근무가 이뤄지니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빌려주는 이도 읽은 이도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찾아가는 도서관은 기차처럼 묵묵히 운행했다.

    그러길 1년. 길 위의 책방으로 떠돌던 '찾아가는 도서관'은 지난 2006년 11월 어엿한 독립공간을 갖게 됐다. 꼬마도서관으로 정식 개관을 한 것. 텅 빈 서가를 채운 것은 십시일반 모인 온정이다.

    "동남아 여행 갈 때 책 한 권 부탁해요"

    "지난 여름 아름다운재단과 공동으로 도서기증 캠페인 '책날개를 단 아시아'를 실시했습니다. 여름에 동남아시아 쪽으로 배낭여행과 휴가 많이 떠나잖아요. 여러분들이 여행가는 그 나라가 바로 이주노동자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책을 구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실 외국에 나가 책을 사는 게 번거로운 일인데 많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신순영씨는 고이 챙겨둔 택배상자를 펼쳤다. 그 안에서는 힌디어로 된 해리포터와 어린왕자·네팔어 사전 등 서너 권의 책과 엽서 한 장이 딸려 나왔다. 책을 보내는 사람들은 꼭 편지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를 돕는 작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네팔 사람들한테 많이 받아왔거든요...' 청소년 국제봉사단체의 회원이라고 소개한 후원자의 사연이다. 또 다른 상자를 열었다. 태국으로 휴가가는 상사에게 태국 만화책을 사다달라고 부탁해서 보낸다며 그 상사의 이름으로 기증해 달라는 애교 섞인 내용이다.?

    "보통 정성이 아닌데 고마운 분들이죠. 책을 읽는 이주노동자 분들도 누군가 자기들을 위해 마음을 써준 것에 무척 감동해요. 도서기증캠페인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기회 같아요. 다름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실천 속에서 인권감수성, 다문화감수성이 길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서기증캠페인에는 아시아나항공과 외환은행 등 대기업도 참여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취항국에서 이천여 권의 책을 구입해 기증했다. 또 2월 하순 경 인천공항 외환은행 지점에는 도서기증함이 설치된다. 여행객들이 손쉽게 책을 기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일이 우리들 생활의 일부이듯이, 이주민과 책을 나누는 일 역시 나직하고 끊임없는 일상의 실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옆 음식점, 베트남 이주여성 동화읽기 모임?

    ▲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이 참가하는 마을잔치. 꼬마도서관을 중심으로 다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꼬마도서관


    꼬마도서관은 마을에 섬처럼 외롭게 떠있는 이주노동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역주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 부대끼는 공간, 수다와 웃음이 도란도란 꽃피는 쉼터를 지향한다. 작년 11월에는 지역주민과 이주노동자가 어우러지는 마을잔치를 열었다. 인근 공원의 작은 무대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벼룩시장, 책 전시회, 음식마당 등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의 시디를 준비해서 노래를 불렀고요. 여러 나라 음식을 먹고요. 서로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자연스레 인사도 나누었죠. 이주민과 지역주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조금은 낮추었다고 생각해요. 또 이주노동자들끼리도 출신국가별로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는데 다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꼬마도서관은 다양한 '즐길 거리'를 모색 중이다. 앞으로 종종 멍석을 펴줄 작정이다. 오는 6월부터는 일요일 밤마다 근처 공원에서 아시아 영화 한 편씩을 상영할 계획이다. 또 도서관 옆 베트남 식당에서는 올 1월부터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동화읽기 모임도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이벤트 보따리를 풀어놓는 신순영씨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이주민을 오십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엄연한 일부죠. 그런데도 외국인노동자는 인정하지만 내 눈앞에는 안 보였으면 하는 의식이 있거든요. 언제까지나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것도, 언론에서처럼 동정의 대상으로 다루는 것도 예의는 아닌 거 같아요. 또 그분들을 완전히 우리나라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도 월권이고요. 있는 그대로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인정하고 두루두루 섞여 사는 풍토가 돼야죠.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미 우리라고요."

    이 집은 누가 지었을까, 알아맞춰보세요

    '다문화'는 어느 날 기적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하기는 어렵다. 또한 달라진다 한들, 삶의 개선 폭과 변화의 섬세한 결을 무슨 수로 증명할까. 신순영씨는 성과주의의 잣대로 보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일처럼 보이고 답답한 일이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마음이 보챈다고 삶이 뜻을 받아주던가. 그저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듯 살아갈밖에.?

    아담한 가게 크기의 꼬마도서관. 그러나 벽면의 책들은 팔만대장경처럼 위대해 보였다. 영혼의 양식인 저 책들도 귀하지만 집과 공장 외에 딱히 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꼬마도서관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문득 마음의 찬 서리 피할 방한 칸을 마련해준 후원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누굴까. 들꽃 같이 선한 마음을 가진 그는.?

    궁금증을 품고서 신순영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실마리가 풀렸다. 후원자는 인권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서 이주노동자 찬드라씨의 사연을 다뤘던 '친절한 감독님'이었다. 그가 어디선가 "이주노동자지만 괜찮아"라며 웃고 있는 듯 했다. 왜 이리 가슴이 짠해질까. 이 행복한 뭉클함.

    김지영?기자

    덧붙이는 글 | 꼬마도서관 블로그 http;//happylog.naver.com/tinylibrary.do
    420-808 경기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266-1, (032)684-0247?
    자원봉사: 도서 정리 및 분류 작업, 이용자 편의를 위해 통역 가능자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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