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7 [조선일보 2007-06-20]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도서관'
[조선일보 2007-06-20]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도서관'? 부산 반송동 주민들 십시일반으로 짓는 '느티나무 도서관' 내달 문열어
"우리 아이들 책읽고 쉴수 있는 공간 우리 힘으로 만들자" 할머니는 연금 쪼개고 아빠들은 술값 아끼고 아이들은 저금통 헐고? 땅주인은 땅값 깎아주고 건축설계사는 무료 설계 구청은 세금 면제해줘
요즘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1~3동)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세워지고 있는 신축건물(4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할머니도 있고, 뒷짐을 지고 건물 구석구석을 꼼꼼히 둘러보는 아저씨도 있다. 아이들은 한참 동안 건물 주위를 뱅뱅 돌다가 간다. 작년부터 온 마을 주민들이 애지중지 보물처럼 여기며 완공을 기다려온 이 건물 이름은 ‘느티나무 도서관’. 반송 주민들의 ‘마을 사랑’과 땀의 결실인 이 도서관이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반송 주민들이 “우리 애들이 마음껏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보자”며, 십시일반(十匙一飯) 갹출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10년 전 반송 주민들이 만든 주민자치단체 ‘희망세상’이 주축이 됐다.?
◆십시일반 1억 모으기
처음에는 모금이 쉽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도서관은 무슨 소용이냐”며 고개를 돌리는 주민들이 태반이었다. 희망세상 회원들이 직접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을 벌였다. 아이들도 거리 모금에 나섰다.?
▲십시일반 돈을 갹출하고 모금 활동을 해서 마을 도서관을 짓고 있는 부산시 반송동 주민단체‘희망세상’회원들과 주민들. 뒤에 보이는 공사중인 건물이 내달 준공할‘느티나무 도서관’이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닫혀있던 주민들의 마음이 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조금씩 푼돈을 내놓았다. 어느 초등학교 6학년생은 1년 동안 부모님께 받은 용돈 10만원을 기부했고, 반송2동 시장의 한 상인은 장사해서 남은 돈을 매일 1%씩 건넸다. “반송 주민”이라고만 밝혀온 한 할머니는 작년 12월부터 매달 연금에서 2만원씩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소아과 병원 의사는 매일 환자 한 명에 대한 진료비를 도서관을 위해 내놓고 있다. 반송동 아버지들이 참여하는 ‘좋은 아버지들의 모임’ 회원 20명은 ‘술값 아껴 도서관에 기부하기’ 운동을 7개월째 펼치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저금통이 13개나 모였다. 이렇게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은 지금까지 1억원. 6000만원은 땅(38평)을 사고, 나머지는 도서관 건물을 짓는 데 썼다.
지역 유지들도 기부에 적극 참여했다. 도서관 땅 주인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셈 치겠다”며 시세보다 2000만원이 싼 6000만원에 선뜻 계약을 했다고 한다.?
20년 넘게 반송에서 살아온 한 주민은 땅을 사는 데 부족한 돈 3000만원을 계약서도 쓰지 않고 무이자로 빌려주기도 했다. 무료로 설계를 맡은 서금홍 건축설계사는 “나라에서도 하기 힘든 일을 지역 주민들이 하려고 한 것에 감동을 해서 설계를 맡게 됐다”며 “반송 도서관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똘똘 뭉친 지역 주민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도 줄이어
도서관을 짓겠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각 기관들도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해운대 구청은 “취득세와 등록세를 면제하고 앞으로도 돕겠다”며 약속했고, ‘책사회(책읽는사회문화재단)’는 도서관 인테리어를 해주기로 했다. 7월 문을 열 예정인 도서관은 밤 9시까지 개방하고 아이들이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요즘 희망세상 사무실에는 벌써부터 ‘도서관 지킴이’를 자원하는 주민들의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좋은 아버지 회 모임’ 회원들은 저녁 밥을 준비하는 엄마들을 대신해 밤에 도서관을 돌보기로 했다. 한 초등학교 학부모회 회원들은 “도와줄 것은 청소뿐”이라며 청소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희망세상 김혜정 사무국장은 “앞으로도 모금을 꾸준히 해 우리 힘으로 도서관을 운영해나갈 것”이라며 “나중에 반송 아이들이 커서 ‘반송에 살아서 좋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