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7-03-16] 아이들이 물려받은 엄마아빠 나눔삶터 [희망의 작은 도서관] 성남 ‘책이랑’ 어린이 도서관
▶ 성남시 책이랑도서관은 70년대 이 지역 노동자들의 교육공간과 쉼터 구실을 했던 ‘만남의 집’에 자리하고 있다. 그때 여성노동자로 이곳을 찾은 이들은 이제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장 양요순 수녀가 도서관을 찾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80년대 노동운동 산실이자 쉼터 여성들, 엄마 되면서 도서관 들여 “20년만에 새단장하면 예뻐지겠죠”
성남 책이랑어린이도서관은 산동네의 복잡한 시장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약도가 없으면 찾아가기 힘들다. 도서관 안내소를 자처하고 있는 상대원시장 입구 민당약국에서 약도를 얻어 구불거리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추운 날씨에도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힌다. 마당에 들어서자 목련나무 가지 사이로 드디어, 책이랑어린이도서관이 보인다.
23평의 도서관에는 6500여권의 어린이책과 엄마들을 위한 책이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하루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꾸준히 찾아온다고 했다.?
아이의 연령대별로 모인 엄마들의 동아리도 활발하다. 그림책 읽어주기, 글쓰기, 비즈공예, 역사 등 분야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원봉사 활동에 열정적이다.
정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동네 홀몸노인을 위해 도서관에 딸린 작은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고, 앞으로는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게 양요순 관장의 생각이다.
이 도서관의 역사는 찾아오는 길만큼 굴곡도 많고 사연도 많다. 책이랑 도서관의 역사는 1970~80년대 성남지역 노동운동의 요람이었던 ‘만남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70년대 청계천에 거주하던 가난한 노동자들을 성남으로 강제이주시켰을 때 현재 도서관 관장인 양요순 수녀는 그들과 함께 낡은 주택에서 살며 노동자 교육을 시작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노동자들의 인권과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고자 세상을 향해 외치던 시절이었다.
78년엔 독일의 엔지오 단체가 30여명의 노동자들이 작은 공간에서 함께 숙식을 하고 교육하는 모습을 보고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지원해줬다. 양요순 수녀와 노동자들은 그곳을 ‘만남의 집’이라 이름 짓고 ‘더불어 삶’을 시작한다. 책이랑 도서관은 현재 만남의 집 1층에 자리잡고 있다.
80년대 이 건물은 노동운동의 산실이자 쉼터였고 노동자들의 배움터였다. 시간이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만남의 집’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고 노동운동으로 모였던 모임이 이제는 주부 모임으로 바뀐 것이다. 94년 ‘성남 함께하는 주부모임’이 만들어졌고 지역의 아이를 함께 기르는 방안을 찾다 99년 3월 책이랑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게 됐다.
2007년 삼성, 책읽는사회, 한겨레가 함께하는 희망의 작은 도서관 재단장 사업에 선정되면서 책이랑 도서관은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건물에 있다 보니 새벽부터 보일러를 틀지만 오후가 되어도 도서관 군데군데가 서늘하다. 에어컨이 없어 여름이면 도서관은 한증막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양요순 수녀는 이번 재단장으로 담장도 낮추고 3층을 다락방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그는 마당도 꾸미고 도서관 안팎도 예쁘고 눈에 띄게 꾸며 아이들이 오고 싶고 엄마들이 보내고 싶은 도서관이 됐으면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도서관이 예뻐지면 많은 아이들이 자주 찾아오게 될 거예요. 아이들이 와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알찬 프로그램과 함께 나눔의 삶을 배웠으면 해요. 책이랑 도서관은 나눔의 도서관이에요.”